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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 끝난 반 전총장의 정치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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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 끝난 반 전총장의 정치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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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2.0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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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1일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지난달 12일 귀국해 사실상 대선행보에 나선 지 20일 만으로, 과거 고건·정운찬 전 총리 등 제3지대 후보로 거론됐다가 중도 포기한 전철이 이번에도 되풀이됐다. 특히 반 전 총장은 범여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혀온데다 한때 대선주자 지지율 1위까지 올랐던 상황이라 그의 불출마 선언은 조기대선 흐름이 가팔라지는 대선정국에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제가 주도하여 정치교체 이루고 국가 통합을 이루려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갈가리 찢어진 국론을 모아 국민대통합을 이루려는 포부를 말한 것이 (귀국 후) 지난 3주간 짧은 시간이었다"며 "그러나 이런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뉴스로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됐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과 가족,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됨으로써 결국 국민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됐다"며 "일부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 태도에 지극히 실망했다.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리며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제가 이루고자 한 꿈과 비전은 포기하지 않겠다. 10년에 걸친 사무총장 경험과 국제적 자산을 바탕으로 나라 위기를 해결하고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어떤 방법이든지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이 어떤 사유를 들어 불출마를 선언했든 보수진영 내 유력 대선후보의 중도 낙마로 대선 구도의 급변이 불가피하게 됐다. 다만 반 전 총장이 전날 "이제는 행동이 필요한 때"라며 개헌추진협의체 구성과 대선 전 개헌을 제안한 지 하루 만의 급반전이어서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그동안 반 전 총장은 '진보적 보수주의'를 자처해 왔으나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언행으로 '반반'(半半)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진보와 보수 사이의 중도를 표방한 셈이나 그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아 상당한 혼선을 빚은 게 사실이다. 귀국 일성으로 '정치교체와 통합'을 내걸고 "한 몸 불사를 각오가 돼 있다"는 다짐도 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당이 없다 보니 내 사비로 모아놓은 돈을 쓰고 있다. 어떤 정당이든 함께해야 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숙성되지 않은 후보라는 부정적 이미지만 각인한 셈이다. 귀국 이후 10%대 초·중반으로 지지율이 급락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대선 합종연횡의 대상으로 꼽혔던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우리 당은 셔터를 내렸다"고 선을 그었고, 반 전 총장이 둥지를 틀 가능성이 있었던 바른정당도 "들어오려면 오고 말려면 말라"며 냉담하게 돌아섰다.


반 전 총장의 설익은 정치 실험은 조기 실패로 귀결됐다. 능력과 자질, 도덕성 등 기본적인 검증 항목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채 전직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간판에만 쏠렸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다. 기성 정치에 식상한 틈을 비집고 참신함을 앞세운 정치 신인들이 등장하곤 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난 전례에 다름 아니다. 확실한 정치 철학과 비전도 없이 분위기에 편승하려다 좌절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 전 총장은 그래도 국제무대를 누빈 국가 자산인데 생채기가 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반 전 총장의 중도 하차로 가뜩이나 인재 기근에 허덕여온 보수진영은 타격을 받게 됐다. '최순실 사태'로 막다른 길에 내몰려 있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인 이번 충격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제3지대론', `빅 텐트론' 등 반문(반문재인) 세력 결집을 통한 전세 역전 시나리오도 탄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한 축을 떠받치는 보수의 역할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이 보수 쇄신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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