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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동해안에 부는 악마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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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동해안에 부는 악마의 바람
  • 윤택훈 지방부장 속초담당
  • 승인 2018.04.02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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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훈 지방부장 속초담당

봄이면 강원 동해안 지역은 유난히 강한 바람이 불면서 산불이 발생해 대형 피해를 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이 곳에 사는 주민들은 바람만 불면 불이 나지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바람은 불을 불러오고 불은 봄의 기운을 받아 움트는 산천의 새싹을 죽음으로 내 몰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강원 동해안 지역에서는 바람과 불은 봄의 전령사 같다는 말이 주민들 사이에서 나올 지경이다. 바람은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이름이 붙는다. 기상청이 동서남북 사방을 세분화 해서 16 방위의 풍향을 측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이나 지형에 따라 바람의 방향이 다르다. 남풍을 마파람이라 하고, 동풍을 샛바람, 서풍은 하늬바람,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은 된바람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봄에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바람은 마파람도 샛바람도 아닌 높새바람이다.

이 바람 때문에 큰 산불이 자주 일어나기도 한다. 높새는 일반적으로 푄(fohn) 현상으로 이해한다. 푄은 원래 알프스의 북사면(北斜面)을 향해 불던 따뜻한 남풍을 부르던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돼 지금은 산을 넘어 불어내리는 건조한 국지풍(局地風)을 부르는 용어가 됐다.강원도에서는 이 바람을 다르게 ‘양간지풍(襄杆之風)’이나 ‘양강지풍(襄江之風)’으로 부른다.

태백산맥을 넘어 강원도 양양과 고성 간성, 양양과 강릉으로 부는 강한 바람을 특별히 부르는 이름이다. 양간지풍은 고온 건조한 특성이 있는 데다 속도까지 빠르다. 영서 지역 차가운 공기가 태백산맥을 넘을 때 역전층을 만나 압축되는 동시에 속도도 빨라지기 때문이다.

양간지풍이 불 때 영동 지방과 영서 지방의 기온 차이는 4℃ 이하가 전체의 55%, 4~10℃인 경우가 39%, 10℃ 이상인 경우도 5% 정도나 된다.이 때문에 강원도에 산불이 나면 불길을 잡기가 여려워 늘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올 들어 지난달 축구장 면적(7140㎡) 164개와 맞먹는 산림이 잿더미가 된데 이어 지난달 28일에도 고성군에서 산불이 발생, 40㏊의 산이 화마에 소실됐다. 강원 동해안 고성 산불은 양간지풍(襄杆之風)을 타고 번진 가운데 큰 피해를 낸 것이다.
 
이 밖에 동해안에서는 삼척(1994),고성(1996),고성·양양(1998,2000) 등 짝수 해에 유난히 많은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동해안 산불은 유별나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시대에 발생한 전체 63건의 산불 가운데 60%인 38건이 동해안 산불이다. 봄철인 1489년(성종 20년·왕조실록)3월25일과 1643년(인조 21년·승정원일기) 4월20일에 발생한 양양산불이 특히 눈길을 끈다. 최악의 동해안 산불은 순조 4년(1804년)에 발생했다.
 
당시 불로 민가 2600호가 소실됐고, 61명이 숨졌다는 기록이 있다. 서원과 사찰(6곳),곡식 창고 등도 소실됐다. 이에 앞서 현종(1672년)때엔 65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191시간을 끌며 2만3794ha를 초토화 시켰다.

당시 추산한 피해액만 1000억원.1996년에도 3762ha에 227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2005년 발생한 양양산불은 천년 고찰 낙산사를 집어삼키며 394억원의 피해를 냈다. 동해안 산불이 두려운 것은 강풍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을 타고 넘어온 바람은 강하고 건조하다. 작은 불씨 만으로도 쉽게 발화된다.초속 20m∼30m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질주하는 불길은 주의의 온갖 것을 불태우며 초토화시킨다. 봄철 백두대간을 넘은 바람은 ‘악마의 바람’으로 불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디아블로(Diablo Wind)’,LA의 ‘산타아나(Santa Anas·사탄의 바람)을 닮았다.
 
물기 없는 사납고 거친 바람이다. 산불 피해는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생태·경제·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는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엔 생명이 발붙일 틈이 없다. 복원까지 기나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생물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경제적 손실은 산술적으로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대기오염과 일산화탄소 배출 등 기후변화를 초래하고 정서적 트라우마 등 사회적 손실도 막대하다.
 
강원도 산불은 2014년 48건에서 2015년 96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2016년에도 81건이 발생했으며 올해만 벌써 18건째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에 산천에 새싹들을 화마가 집어 삼키면서 생태계를 초토화 시키고 있다. 불조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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