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불허할 경우 대내외적 파장 우려한 듯
상태바
불허할 경우 대내외적 파장 우려한 듯
  • 곽병오기자
  • 승인 2018.12.05 17: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설 허가 안돼” 대답 비율 58.9%…공론조사위, 개설 불허 권고
1천억 손해배상책임·지역주민반발·이미지 실추 등 우려 ‘허가’

▲원희룡 제주지사가 5일 오후 제주도청 브리핑룸에서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조건부 개설 허가 방침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원희룡 제주지사가 공론조사위원회의 녹지국제병원 불허권고를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했던 입장을 견지했던 것을 바꿔 영리병원을 허가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화조사위는 지난 10월 4일 6개월간 공청회와 설문조사 등 공론화 절차를 거친 끝에 ‘개설을 허가하면 안 된다’고 대답한 비율이 58.9%로 반대 의견이 허가 의견보다 20% 포인트 높게 나타나 개설 불허를 원 지사에게 권고했다.


 원 지사가 입장을 바꾼 것은 불허할 경우 제주에 미칠 대내외적인 파장을 우려했던 때문으로 보인다.
 우선 1000억 원 내외로 예상되는 손해배상 책임과 지역주민의 반발이다.
 녹지국제병원을 설립한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는 공론조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이미 대형 법무법인을 통해 소송을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JDC·제주도의 적극적인 투자 권유와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는 등 법적 절차에 따라 병원을 완공하고 의사와 간호사 등 134명을 채용한 상황에서 개원 불허를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는 게 중론이다.
 더구나 병원이 들어와 동네가 발전한다는 말에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을 헐값에 넘긴 주민들은 “그 사이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면서 “토지반환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두 번째로는 행정의 신뢰성과 신인도 추락으로 인한 대외 이미지 실추다.
 제주의 경우 외국인 투자실적이 다른 시·도와 비교해 사실상 정체 수준이다.
 공사 중단된 예래휴양형주거단지사업을 비롯해 오라관광단지 개발사업, 신화련 금수산장 관광단지 조성사업 등 외국인 투자사업이 시민사회단체의 반발 등으로 공사 도중 또는 인허가 과정에서 줄줄이 애를 먹고 있기 때문에 제주도가 국내외 투자자들의 투자기피처가 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녹지국제병원의 개원 불허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뒷짐만 지고 있는 정부에 대한 아쉬움도 엿보인다.
 도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녹지국제병원 처리 방향을 놓고 정부 측과 논의했지만 책임 있는 어떠한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항변하고 있다.
 도는 지난해 9월 4일 ‘외국의료기관(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신청 관련 협조 요청’이라는 공문을 보건복지부에 발송했다.


 공문에는 2015년 12월 18일 ‘외국의료기관의 사업계획서’를 승인한 정부와 제주도가 공동 책임으로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신청에 대응하자는 요청이 담겼다.
 그러나 복지부는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권자는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이므로 제주특별자치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허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어 ‘정부는 의료 공공성을 훼손하는 의료 영리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것을 밝힌 바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덧붙였다.


 원 지사는 9월 열린 제주도의회 정례회에서도 “새 정부 출범 이후 비공식적으로 다각도의 루트를 통해 타진도 했고 제안이 오갔지만, 결론은 없었다”며 “쉽게 말해 누구도 선뜻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제3의 대안을 내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해도 공론조사 결과로 나타난 ‘도민의 뜻’을 거스른 원 지사 역시 거센 비난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그는 6·13 지방선거를 두달 여 앞둔 지난 3월 8일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를 도민 공론형성 후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영리병원을 둘러싼 논란이 선거 쟁점화하자 결정을 최대한 늦추는 모양새였다.
 원 지사가 공론화조사위의 불허 권고를 외면하고 영리병원 허가를 내줌에 따라 3억4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시행한 공론조사는 ‘선거용’ 이었다는 비난에 휩싸일 전망이다.
 한편 이날 허가가 발표되자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도내 30개 단체·정당으로 구성된 의료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이하 도민운동본부)는 이날 도청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도민을 배신하고 영리병원을 선택한 원희룡 제주지사는 퇴진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중국 자본보다 도민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도지사라면 당연히 공론조사 결과에 따라 개원 불허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양연준 의료연대본부 제주지역지부장은 “숙의형 정책개발로 녹지국제병원 개원 불허가 도민의 뜻으로 도출됐다”면서 “그 뜻을 받아들여 영리병원을 불허하고 그간의 과정에 대해 원 지사는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 지부장은 녹지국제병원 개원에 대해 숙의형 정책개발을 대표 청구하기도 했다.


 그는 “영리병원 저지를 위해 지난 10년간 싸워오면서 국내 의료 기업의 녹지국제병원 우회 투자 문제를 제기했으나 도정은 아무런 답변도 내놓은 적 없다”고 비판했다.
 김덕종 민주노총 제주본부 본부장은 “도민 다수가 반대하는 문제를 도민 권력을 위임받은 지사가 거스르는 결정을 했다”며 “도민 삶을 파탄 내는 영리병원 저지를 위해 허가 여부를 떠나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도민운동본부 20여 명은 규탄대회에 이어 도청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 1개 중대 및 도청 공무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도민운동본부는 앞서 낸 성명에서 공론조사 근거가 된 제주특별자치도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 기본조례에 ‘도지사는 숙의형 정책개발로 도출된 결과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된 점을 강조하며 “도민 의사 합치 과정을 거쳤음에도 이를 뒤집을만한 사정이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지방선거 전 공론조사로 영리병원 개설에 대한 비난을 피한 뒤 선거가 끝나자 민주주의 절차와 도민 의견까지 무시하고 개설 허가를 한다는 것은 도민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녹지 측의 소송 겁박이 무서운 것인지, 도민 의사가 중요한 것인지 제대로 인식하라”고 촉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