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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영리병원 취소가 주는 교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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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영리병원 취소가 주는 교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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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1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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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개설허가가 취소됐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17일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녹지국제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전 청문'의 청문조서와 청문주재자 의견서를 검토한 결과 조건부 개설허가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조건부 개설허가 후 정당한 사유 없이 의료법에서 정한 3개월의 기한을 넘기고도 개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원을 위한 실질적 노력도 없었다"며 의료법 64조에 따라 개설허가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제주도는 녹지국제병원이 개원 기한(2019년 3월 4일)을 지키지 않자 지난달 26일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전 청문'을 실시했고, 청문주재자는 지난 12일 청문조서와 최종 의견서를 도에 제출했다. 청문주재자는 15개월의 허가 지연과 조건부 허가 불복 소송 제기 등의 사유가 3개월 내 개원 준비를 하지 못할 만큼 중대한 사유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내국인 진료가 사업계획상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음에도 이를 이유로 개원하지 않았으며, 의료인 이탈 사유에 대해 충분한 소명을 하지 못했고, 당초 병원개설 허가에 필요한 인력을 모두 채용했다고 밝혔음에도 청문과정에서 의료진 채용을 증빙할 자료도 제출하지 못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원 지사는 "지난 12월 5일 조건부 개설허가 이후 개원에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협의하자고 수차례 제안했지만 녹지측은 이를 거부하다가 기한이 임박해서야 개원 시한 연장을 요청해왔다"며 "실질적인 개원준비 노력이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요청은 앞뒤 모순된 행위로서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녹지 측은 애초 외국인을 주된 고객으로 하겠다고 사업계획을 제시했기 때문에 내국인 진료 여부는 개원에 있어서 반드시 본질적이거나 중요한 부분이라고 보기 어려움에도 이를 이유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병원을 개원하지 않고 있는 것 또한 모순되는 태도로,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원 지사는 당초 공론화위원회의 '불허' 권고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진료에 한해 조건부 개설허가 결정을 내린 것은 침체된 국가경제 활성화와 새로운 의료관광사업 육성, 행정에 대한 신뢰도 확보, 한중 국제관계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이었다고 밝혔다.

 

녹지병원 허가가 취소된 것에는 한국의 공적 의료시스템 붕괴를 우려한 시민단체 등의 반대 영향이 컸다. 영리병원이 제주도에서 진료를 시작하면 인천 송도를 비롯한 전국 8개 경제자유구역에도 영리병원이 생길 가능성이 있고 이는 의료 양극화, 의료 공공성 훼손 등의 여러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걱정이었다. 이런 의견에 타당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선진국보다 훨씬 낫다는 한국의 공적 의료시스템이 제주도의 녹지병원을 계기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국민들에게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주의 녹지병원이 공적 의료시스템을 흔드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련 당국이 오락가락하는 입장을 보이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녹지병원은 2015년에 제주도를 거쳐 보건복지부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승인을 받았다. 이를 근거로 2017년에는 778억원을 들여 병원건물을 완공했고 적지 않은 인력도 채용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제주도는 여론을 고려해 공론조사위원회에 판단을 물었고 '불허권고'가 나오자 외국인에 대해서만 의료행위를 하라는 조건부 허용을 발표하더니 이번에는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되면 제주도와 정부 모두 신뢰저하라는 부작용에 직면할 수 있다. 녹지병원 측은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 제도를 이용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와 제주도는 이런 소송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고, 다시는 이런 혼란이 없도록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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