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5월 잔인한 보릿고개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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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5월 잔인한 보릿고개의 달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9.05.0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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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는 보릿고개와 석유파동을 거쳐 수출이라는 돌파구를 마련한다. 1960년대 철광석, 텅스텐 등 천연 자원을 중심으로 수출을 시작해 1970년대에는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섬유나 신발, 가발 등을 수출하면서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 넣었다.
 
1980년대에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철강, 기계, 선박, 전자 제품 등을 수출했고 1990년대들어 첨단 기술력으로 무장한 반도체를 앞세웠다. 2000년대에는 자동차, 선박 등의 중공업과 무선 통신 기기, 휴대폰 등 고퀄리티 제품을 수출하으로써 수출 강국으로 우뚝 섰다.
 
지난해에는 우리 무역은 2년 연속 1조 달러, 수출은 최초로 6000억 달러를 넘어 세계 수출순위 6위를 유지했다. 품목별로는 반도체가 단일 품목 최초로 1000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컴퓨터 등 IT부품과 원유 관련 제품, 일반기계도 수출 증가세를 이끌었다. 전기차, 첨단 신소재 등 8대 신산업 품목도 새로운 수출 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계속 신기록을 유지해 온 한국수출이 글로벌 경기둔화와 미중무역전쟁 등 외적 요인과 수출품목 다변화와 수출선 다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주춤하고 있다.한국 수출의 양대 축인 반도체와 중국이 흔들리면서 수출실적이 4개월 연속 하락했다. 지난 3월 수출을 보면 전년 동기 대비 8.2% 감소한 471억1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2월에 이어 4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부모님 세대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산업화 시대에 이어 민주화운동 시대를 거쳐 첨단 정보화·글로벌화 세상을 달리게 됐다. 이제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을 노릴 정도까지 커졌다. 모두가 땀 흘려 노력한 대가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경제적 풍요를 구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는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학생들은 입시교육에 치여 해맑은 웃음이 사라졌고 젊은층은 극심한 취업난으로 오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 포기)라고 자조한다. 30~50대는 고용불안과 격무, 폭등하는 전월셋값으로 시름에 잠겨 있다. 자영업자는 최저임금조차 못 받다가 폐업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노인층 역시 고단한 노년을 보내는 분들이 많다. 일종의 정신적 보릿고개 시대라고 할까.
 
어렵고 힘들었던 지난날 우리에게는 ‘보릿고개’란 시절이 있었다. 지난가을 수확한 곡식은 바닥나고 햇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의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를 말한다. 최근에는 경제성장과 함께 농가소득도 늘어나 보릿고개라는 말은 옛말이 돼버렸지만 연례행사처럼 찾아들던 농촌의 빈곤상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하지만 먹을 게 없어 굶주리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또 다른 의미의 보릿고개 5월이다.
 
5월엔 이런저런 기념일이 많다.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각종 기념일이 몰려 있다. 생일과 결혼기념일까지 더하면 챙겨야 할 행사가 몰아도 너무 몰아친다. 여기에 청첩장이라도 겹치면 ‘파산각’이다. 게다가 기념일과 관련해 연휴라도 이어지면 더욱 허리가 휜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갑이 얇은 서민들은 매년 근심이 깊어진다.

특히 5월 들어 물가가 줄줄이 인상되면서 가뜩이나 얇은 지갑을 더욱 얇게 만든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폭 축소 결정으로 지난 7일부터 휘발유 가격이 ℓ당 65원 인상됐다. 지난 1일부터는 소주가 가격 인상에 합류했다. 소주와 함께 먹는 서민 대표 음식인 삼겹살 등 돼지고기값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맥주는 이미 지난달부터 가격이 인상됐다.
 
통계청이 집계한 4월 소비자물가 동향은 전년 동기 대비 0.6%, 전달 대비 0.4% 올랐다. 통계상의 안정세와 달리 체감물가가 오르고 있는 것이 문제다. 소비자가 자주 구매하고 지출비중이 큰 141개 품목으로 구성한 ‘생활물가지수’ 항목 중 식품이 가장 많이 올랐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 한다. 혹자는 가난의 달, 출혈의 달, 파산의 달이라고도 한다. 따뜻하고 풍성함을 느껴야 할 5월이 얇아지는 지갑으로 가슴 떨리는 날들의 연속이다. 허리끈을 질끈 맨다고 사정이 나아지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가족이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위로하기엔 살림살이가 너무 팍팍해지는 건 아닐까. “오르지 않는 것은 월급뿐”이라며 한숨 쉬는 서민들에게 분명 5월은 잔인한 보릿고개의 달이다.

결국 먹고사는 문제가 핵심인데 주인(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리인(대통령, 여야 정치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들이 주인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우지 못하도록 해 대리인 비용(agency costs)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대리인은 유한하지만 주인은 무한한 법인데도 대리인들은 사리에 눈이 멀어 주인을 위한 최적의 의사결정을 회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가 예산이 힘의 논리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단적인 예다. 따라서 주인은 권력을 위임받은 대리인에게 공기업 개혁,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 생산적 복지 등 국익과 민생에 만전을 기하도록 명령할 권리가 있다. 복지와 증세의 조화 문제도 대리인들이 좀 더 책임감 있게 다루도록 감시할 필요가 있다.정치권은 여야를 떠나 대한민국호를 이끄는 대리인으로서 좀 더 확고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10일이면 만 2년이 되는 문재인 정부는 집권 직후부터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였다. 최저임금을 30% 가까이 올렸고, 주 52시간 근로제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단행했다. 지금까지 성과는 별로 좋지 않다. 수출과 투자가 부진하다. 한국은행이 최근 1년 사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네 차례나 떨어뜨려 2.5%로 하향 조정했을 만큼 경기가 나쁘다. 고용도 살아나지 않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집권한 정부가 국민에게 새 이념과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분배를 중시하는 소득주도성장 이론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념을 토대로 만든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경제는 실험실이 아니다. 소득주도성장에 매달리다 진짜 중요한 현실의 문제를 놓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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