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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19] 멍청이들아, 집에 가서 시를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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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19] 멍청이들아, 집에 가서 시를 읽어라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9.10.09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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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정치권이 지지층을 선동하고, 반대편을 모욕하는데 혈안이다 보니 시급한 국정현안은 곰팡이가 슬고 있다. 국회무용론이 계속되고 광장만 남은 다면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라’는 요구가 나오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하겠는가. - 
 
며칠 전부터 제법 바람이 차다. 새벽은 부쩍 더디 오고 밤하늘의 별빛은 일찍 찾아온다. 이 달 초까지만 해도 여름옷으로 지낼 만 했으나 이제는 옷 갈이를 해야 한다. 절기상 입추가 지난 지 두 달이 지나 가을은 우리 곁에 확연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찬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도 지나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도 멀지 않았다. 꽃가게의 국화 화분에도 작은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나고 들녘은 누렇게 익어가는 나락으로 물들고 있다. 맑고 푸른 하늘도 서늘한 청량함으로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가을은 수확의 기쁨과 결실의 풍요로움이 하늘과 땅에 가득 차는 계절이다. 사람들이 한 해의 마무리를 정리하며 옷깃을 여미는 계절도 이 맘 때다. 푸르던 잎 낙엽 되어 떨어지는 이 계절에 누군들 겸허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시인 정호승은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노래했다.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가을은 이처럼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알게 하고,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알게 하는 겸허한 계절이다. 하지만 이 땅을 찾아온 우리의 가을은 시인의 노래와 달리 상실과 분노가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1959년 이후 관측사상 가장 많은 태풍이 잇달아 발생, 농어촌의 상실감은 어느 때보다 크다. 지난달 제13호 태풍 ‘링링’이 들녘과 바다를 할퀴더니 보름여 만에 다시 태풍 ‘타파’가 몰아치고, 이달 초에는 제18호 태풍 ‘미탁’이 아린 상처를 덧냈다.
 
강한 바람과 물 폭탄의 비를 동반한 이들 태풍은 농작물 훼손과 침수, 토사 유실, 시설물 파괴, 인명피해 등 곳곳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사람이 죽어가고 수확을 앞둔 나락이 물에 잠기는가 하면 사과와 감, 대추 등 결실을 앞둔 농작물은 가지가 부러지고 나무가 쓰러져 한 순간 물거품이 됐다.
 
태풍은 해수면 양식장도 그만두지 않았다. 양식장 시설물이 부서지고 유실되면서 애써 기르던 각종 어류가 허연 배를 내놓고 집단 폐사했다.
 
엎친 데 덮친다고 했던가. 잇따른 가을 태풍의 생채기가 아물기도 전에 제19호 태풍 '하기비스'(Hagibis)가 강력한 세력으로 또 닥쳐오고 있다.
 
한숨과 시름이 켜켜이 쌓인 농어민들의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또 어떤가. 지난달 17일 경기도 파주의 농가에서 돼지열병이 처음으로 발병한 이후 연천, 김포, 인천 강화까지 확진판정을 받은 돼지 농가가 늘어나면서 전국 확산의 공포를 낳고 있다.

치료할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 상태에서 ‘도살’밖에 방법이 없는 아프리카돼지 열병이 전국으로 확산된다면 이는 재앙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이 가을의 가장 큰 재앙은 대한민국을 반으로 쪼개버린 ‘조국 내전’이라는 여의도발 재앙이다.

3년 전 정권교체를 위해 들었던 ‘하나의 촛불’이 ‘조국수호,  검찰개혁’과 ‘조국 사퇴’로 나뉘어 죽기 살기로 맞부딪히고 있다.

더구나 정치권이 문제해결보다는 자기 뱃속을 채우기에 바쁜 당리당략으로 이를 이용하면서 국회는 실종되고 광장정치의 소리만 남아 가을 하늘을 울리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진영 간 장군 멍군을 주고받으며 한 쪽에서 ‘200만 명이 모였다’고 하면 다른 쪽에서는 ‘우리는 300만 명이 모였다’며 유치한 셈 놀이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갈등과 분열의 불길이 여야 정치권의 옷깃을 태우고 있는데도 그 마저 보지 못하는 ‘멍청이’들의 무능이 재앙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정치권이 지지층을 선동하고, 반대편을 모욕하는데 혈안이다 보니 시급한 국정현안은 곰팡이가 슬고 있다. 국회무용론이 계속되고 광장정치만 남은 다면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라’는 요구가 나오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하겠는가.

여야는 이제라도 지지층을 선동하는 멍청한 짓들 그만 두고 실종된 정치를 복원하는데 전력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제 충분히 힘들고 불행하다. 웃기는 짓들 그만두고 제발 제자리로 돌아가라. 할 일이 없으면 돌아가서 정호승의 시 한편 읽는 게 차라리 나라를 위한 일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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