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
상태바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
  • 최재혁기자
  • 승인 2019.11.21 15: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정부가 오는 2025년부터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제 전환하는 내용의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을 지난 7일 발표했다. 계획대로 실행되면 외고는 33년 만에, 국제고는 27년 만에, 자사고는 24년 만에 사라진다. 

정부는 이날 발표에서 교육 불공정 해소를 폐지 이유로 내세웠지만 이번 방안은 절차와 명분 등 모든 면에서 결함으로 얼룩져 있다. 정부는 자사고 등의 설립 근거가 명시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 이들 학교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이는 거꾸로 시행령의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이번 발표 전 폐지 대상 학교 어디와도 합의를 거치지 않아 추후 법적 소송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에서 폐지 찬성이 50% 넘게 나왔다는 논리 역시 궁색하다. 백년대계인 교육을 여론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절차적 정당성보다 걱정인 것은 하향 평준화 문제다. 명문 사립학교를 육성하는 선진국 사례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4차 산업혁명 시대 수월성과 다양성을 강화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자사고 등을 귀족학교라는 이념적 틀에 엮어 넣은 채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치우친 일반고로 미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교육부가 자사고·외고·국제고 2025년에 일반고 일괄 전환함에 따라 고교서열화 해소방안 발표를 전제로 일반고 활성화 2조원 이상 지원이 관건이다.

2025년부터 자사고·외고·국제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기 위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한다. 이렇게 전환되는 자사고 등은 이후 선발과 배정은 일반고와 동일하게 운영되지만, 학교 명칭과 특성화된 교육과정은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

또 2025년도 고교학점제 전면도입을 위해 2022년에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을 전면개정하고, 고교학점제에 따른 대입제도 개편도 추진된다. 이러한 내용의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을 발표하면서 일반고 활성화를 위해 약 2조2천억 원을 투입해 일반고 중심의 고교 생태계를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고교 평준화 정책은 박정희 정권 때 처음 도입됐다. 박 대통령은 1973년 2월 “공부는 고등학교에서 더 시키고 중학의 어린 학생에게는 과도한 입시경쟁에서 벗어나 심신을 고루 발달시키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군사 정부는 1974년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고교 평준화를 시행했다.

1975년에는 인천, 대구, 광주까지 평준화 지역을 확대했고, 1979~80년 대전, 전주, 마산, 청주, 수원, 춘천, 제주(1979) 창원, 성남, 원주, 천안, 군산, 이리, 목포, 안동, 진주 15개 도시로 고교평준화제도를 확대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1968년 초등학생을 입시 경쟁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며 중학교 무시험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고교 평준화 정책이 도입될 당시에도 ‘수월성 교육을 포기하는게 아니냐, 하향 평준화된다’ 등의 비판이 있었지만 결국 시행됐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고교 평준화 정책과 어떤 측면에서 유사한 정책을 발표했다.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오는 2025년 3월부터 일반 고등학교로 전환한다는 내용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7일 자사고, 특목고의 일반고 전환과 일반 고교 역량 강화대책을 담은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을 밝혔다.

유 부총리는 “전체 학생의 약 4%를 차지하는 외고, 자사고 등에서 우수 학생을 선점하고 비싼 학비와 교육비가 소요되다 보니 고등학교가 사실상 일류, 이류로 서열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설립 취지와 다르게 학교 간의 서열화를 만들고 사교육 심화 등 불평등을 유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보수성향의 학부모단체와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는 “공정성을 가장한 획일적 평등으로의 퇴행적 조치”라며 반발했다.

이들 학교의 문제점은 설립 초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지난 1992년 도입한 외고와 1998년 도입한 국제고, 2001년 도입한 자사고 등은 지난 1974년 평준화 정책의 보완 성격이 있었다. 자사고와 특목고는 과거 경기고, 경복고, 서울고, 경남고, 부산고, 광주일고, 경북고, 경기여고, 이화여고, 숙명여고, 선린상고, 경기상고, 덕수상고, 부산상고, 광주상고, 마산상고, 대구상고, 서울여상, 서울공고, 금오공고, 전주고, 대전고, 마산고, 진주고, 제물포고, 춘천고 등 각 지역별 명문고를 대체한 성격이 컸다. 일반고 일괄 전환 대상학교 숫자도 외고 30개교와 국제고 7개교, 자사고 38개교 등 75개 고교로 과거 전국의 명문고 숫자와 비슷하다.

베이비붐 세대와 학력고사 및 수능 세대는 수시보다 수능이 공정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왜냐면 객관적인 단 하나의 지표인 수능점수(그 전에는 학력고사 점수)로만 대학을 들어갔고, 입시제도가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당시엔 못사는 집안의 자녀도 서울대를 비롯한 유수한 대학에 많이 들어간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였다. 그런데 갈수록 이게 안되고 있다. 있는 집 자녀들이 좋은 학교에 더 많이 들어간다. 한국의 교육제도와 입시제도는 결국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의 서열화와 맞물려 있다. 또한 대학 서열화는 청년들의 취업과 직결되어 있다. 아무리 입시제도와 교육제도가 달라져도 청년실업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문제는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의 실행이 차기 정부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대통령령)을 고쳐서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없애겠다고 한다. 시행령은 국회 논의 절차 없이 정부가 단독으로 고칠 수 있다. 대통령이 바뀌면 시행령은 또다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2022년에 들어설 차기 정부가 내세울 교육정책에 따라 자사고 등의 일반고 전환이 무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교육이 정파적 이익에 휘둘릴 위험성이 커지는 것이다.
 
정부는 이날 일반고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5년 동안 2조2천억원을 투입하는 한편 과학과 어학 등 특정 분야에 대한 심화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특성화학교를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내놓았다. 하지만 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는 인구 감소로 교원과 교육 예산을 감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재원 부족으로 비정규직 강사로 교원을 채워나갈 경우 교육의 질적 수준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반고의 교육현장이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공교육 정상화의 큰 그림도 없이 이 정도 수준의 대책을 갖고 교육의 질적 향상을 꾀할 수 있다고 보는가. 평등의 도그마에 빠진 이 정부의 왜곡된 정책들이 다음 정부에서 어떤 혼란으로 이어질지 걱정이다. 

자사고 등을 폐지한다고 해서 입시 위주의 고교 교육이 달라질지 의문이다. 인재 양성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평등주의 교육은 시대착오적이다. 하향 평준화만 부를 뿐이다. 자원이라곤 두뇌밖에 없는 나라에서 수월성 교육을 가로막으면 무슨 수로 인재를 길러낼 것인가. 정권 입맛에 따라 백년대계가 흔들려선 안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