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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치의 수준’ 은 곧 ‘국민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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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치의 수준’ 은 곧 ‘국민의 수준’이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0.01.1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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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경자년(庚子年), 흰 쥐의 해가 시작됐다.쥐는 십이지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는 동물로, 방위의 신이자 시간의 신이다. 우리 민속에서 쥐가 다산과 풍요, 영민과 근면을 상징하는 동물로 인식됐다는 점을 부각한다. 쥐가 열두 동물 중에서 첫 자리인 것은 영민하기 때문이다.설화에 의하면 신이 동물들의 순서를 정하기 위해 달리기를 시켰다.다른 동물에 비해 형편없이 덩치가 작은 쥐는 정상적인 달리기를 해서는 꼴찌는 떼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쥐는 다른 동물에 비해 뛰어난 머리를 갖고 있었다.

궁리 끝에 묘안을 찾은 쥐는 다른 동물들이 달리기 연습에 몰두하는 데도 아랑곳없이 천하태평이었다. 동물들은 이런 쥐의 모습을 보며 측은하게 여겼다. 연습한다고 해도 꼴찌를 면할 수 없는 처지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쥐는 시합 당일 출발선에서 긴장한 소의 귀에 숨어들었다. 소가 1위를 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소는 호랑이 등 내로라하는 맹수들을 제치고 1위를 질주했다. 고대의 소는 지금의 유순한 소와는 달랐던 모양이다. 드디어 결승선에 1위로 골인하기 직전, 소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순간, 소귀 구멍에 숨어 있던 쥐가 결승선에 폴짝 뛰어내려 소보다 먼저 골인을 했다. 쥐가 상상을 초월한 1위를 한 것이다. 소의 후회는 뒤늦었다. 반칙의 규정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쥐의 영특함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처럼 영리한 쥐의 해에 대한민국이 산적한 현안과 폐단을 극복하는 혜안이 찾아오기를 소망한다.어느덧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오는 4월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정치지망생들이 너도나도 앞 다퉈 출마선언을 하고, 예비후보등록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 누구나 피선거권이 있는 만큼 출마는 자유다, 그러나 정치에 참여하는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간혹 훌륭한 인품을 갖추고 스펙을 쌓은 분이 있는가 하면 지도자로서의 역량이나 함량이 다소 모자라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4월 우리는 대한민국의 입법을 책임지고, 나라살림을 다스릴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있다. 모든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갈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인구규모가 방대한 현대사회에선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 국민은 우리를 대신해서 의정을 책임지고 운영해줄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 그리고 후보자 중에 자기와 이념이 같고 호감이 가는 정치인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러하지 못 할 경우에는 부득이하게 자기의 선택기준에 근접한 후보를 선택할 수밖 없다.

늘 그래 왔듯이 얼마나 많은 정치 후보자들이 말의 성찬을 쏟아낼지 걱정이 앞선다. 결코, 책임질 수 없는 공약이라는 이름의 숱한 말들을 생산할 것이다. 올해는 흰쥐의 해이다. 검은 쥐와 비교되는 상서로운 이미지이기도 하다.총선 예비후보로부터 초청장이 왔다. 현역 국회의원은 의정보고서라는 이름의 총선 출마 홍보물을 보내왔다. 분열된 보수의 통합이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 체류 중인 안철수 전 의원이 정치재개를 선언하면서 향후 정당의 이합집산이 예상된다. 시나브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그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다. 선거 승리를 위하여 정당과 후보자들은 포퓰리즘(populism) 공약을 남발함으로써 유권자의 표심을 왜곡한다. 당선을 위해서라면 경쟁자에 대한 중상모략과 허위사실 유포도 서슴지 않는다.

연고주의가 만연하는 한국정치에서는 혈연·지연·학연이 총동원되어 ‘내편 네편’으로 나누어 ‘유치한 편싸움’이 벌어진다. 선거가 끝나면 유권자들은 다시 현실정치로부터 소외되어 방관자가 된다. 민주주의 꽃이요 축제라는 선거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치의 계절이 오면 유권자는 눈을 더욱 크게 부릅뜨고 각 정당과 후보자의 행태를 주시해야 한다. 정치적 무관심은 민주주의의 반동화를 초래하여 독재정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권자는 정치적 관심의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수호할 의지가 있는 정당과 인물을 찾아내야 한다. 민주주의 가치가 내면화되어 있어야 민주정치를 할 수가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는 흑백논리나 ‘사회적 패권의 교체’를 주장하는 혁명논리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국민의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선동정치는 독재자의 혁명전술이다.국가적 당면과제인 ‘안정과 혁신’을 도모할 수 있는 정당과 인물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북한의 핵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여 국가안보를 확고히 하는 한편,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경제혁신을 통해 미래의 번영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치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은 자신의 출세에 목적을 둔 정치꾼(politician)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봉사하려는 정치인(statesman)으로서의 소명의식이 투철해야 한다. 베버(M. Weber)가 지적한 것처럼 “직업으로서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는 책임의식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거 때는 유권자에게 머리를 조아리지만 권력을 잡으면 목에 힘을 주면서 돌변하는 정치꾼들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링컨(A. Lincoln)의 명언, 즉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에 의한 정부”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정부를 선택하는 것이며, 그 선택의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 국민이 현명하면 ‘훌륭한 정치인’을 선택할 것이요, 국민이 어리석으면 ‘교활한 정치꾼’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동양의 성인 맹자도“백성이 가장 귀하고 나라가 그 다음이며 군주가 가장 가볍다”는 명언을 남겼다. 즉 민본을 국가통치의 근본으로 삼고, 민의를 존중하여 국정에 반영할 것을 주장했다. ‘정치의 수준’은 곧 ‘국민의 수준’이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이며 인도 민족운동의 지도자라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는 나라가 망하는 데는 일곱 가지 원인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원칙 없는 정치, 둘째, 도덕이 빠진 상업, 셋째, 노력 없는 부(富), 넷째, 인격이 빠진 교육, 다섯째, 양심이 마비된 쾌락, 여섯째, 인간성 없는 과학, 마지막으로 희생이 빠진 종교’가 그것이다. 이중 ‘원칙 없는 정치’를 망국의 으뜸으로 꼽았으며 이러한 정치는 부패한 권력을 낳아 망국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에서 한국처럼 법의 해석과 적용이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념은 무조건 옳고, 상대조직의 이념은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진영논리로 흘러 국가의 통치력으로 객관적 법치의 원칙을 파괴함으로 이미 그 기능을 잃어버린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조국일가의 범죄행위와 하명수사로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선거공작이라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

수사선상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모두 청와대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로 밝혀지자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취임과 동시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조직을 개혁이라는 명분을 들어 법과 상식을 벗어난 인사이동을 감행했다. 이 인사의 내막엔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행위에 대한 수사가 좁혀오자 검찰개혁으로 포장해 수사조직을 공중분해시킴으로써 사건 자체를 덮으려는 속셈과 보복성 인사의 성격도 담겨 있다고 보겠다.

원래 검찰은 국민의 안전보장과 국가기강 확립,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부패척결과 약자보호 그리고 인권보장에 그 사명을 두고 있다. 이 사명완수를 위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 검찰조직을 정부와 여당이 요구하는 입맛에 맞게 칼을 마구 휘두르는 현실을 보면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는 애초부터 없는 원칙이 무너진 좌파정치의 민낯을 보고 있다. 간디가 설파한 망국론이 요즈음 한국 사회의 자화상으로 다가옴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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