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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플레이스 12] “관광·문화·역사가 숨 쉬는 보령시 오천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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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플레이스 12] “관광·문화·역사가 숨 쉬는 보령시 오천으로 오세요”
  • 보령/ 이건영기자
  • 승인 2020.01.27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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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불가 오천항 키조개 맛보고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서 인생샷 찰칵
137년만에 복원된 ‘누각 영보정’서 다산 정약용도 인정한 경치로 눈호강
열녀의 표상 ‘도미부인’ 사당·천주교 순교지 ‘갈매못’서 역사 공부까지

[전국은 지금 - 핫플레이스 12]
관광·문화·역사가 숨 쉬는 보령시 오천

충남 보령시하면 대천해수욕장과 머드축제, 무창포 신비의 바닷길이 손쉽게 떠오르지만 과거 보령 북부권의 삶과 생활의 중심지인 오천면에는 조선 초기에 설치돼 고종 33년인 1896년 폐영될 때까지 군선이 142척, 수군이 8400여 명에 이르는 등 서해안의 안보를 책임진 ‘충청수영성’, 다산 정약용과 채팽윤이 극찬한 천하절경 ‘영보정’, 백제시대 열녀의 표상인 도미부인의 정절을 기리는 ‘도미부인 사당’, 가톨릭 신자들의 순교지인 ‘갈매못 성지’, 쪽빛 바다와 오천항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충청수영성 해안경관전망대’는 관광과 문화, 역사까지 살펴볼 수 있다.

 

 
●보령 북부권의 삶과 생활의 중심지, 오천항

오천은 예전부터 보령 북부권의 삶과 생활의 중심지였다. 보령 북부권의 모든 길들은 오천과 통한다는 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주포, 주교, 청소 등 오천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만 세 갈래나 된다.

예전의 영화는 많이 퇴색됐지만 오천항은 천수만 일대의 주요 어항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오천항은 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까닭에 방파에 등 별도의 피항 시설이 필요 없을 만큼 자연적 조건이 좋은 곳이다. 따라서 방파제 없이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선착장에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특히 오천항에서 이뤄지는 잠수기어업으로 채취한 키조개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특산물이다.

키조개 생산량은 연간 4000여 톤으로 전국의 70% 이상을 채취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국내에서 소비되고 일부는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키조개는 여느 조개와 달리 큼직한 패주를 갖고 있는데 100g당 아연이 12.8㎎이나 함유돼 있어 아연의 보고로 알려져 있으며 단백질(100g당 18.2g)과 타우린(100g당 994mg)이 풍부하고 피를 깨끗하게 하는 정혈작용이 있어 임산부의 산후 조리나 피로 회복에 좋으며 술에 혹사당한 간장을 보호하는데도 유용한 수산식품이다.

키조개는 농가에서 곡식을 까불어 돌이나 쭉정이 같은 것을 골라내는 도구인 키(箕-챙이)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크기도 크기지만 다른 조개보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향긋하며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것이 가을 키조개의 특징이다.

오천항은 역사적으로는 조선시대 초부터 충청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된 군항이었으며 백제 시대부터 화이포라는 항구로 이용됐고 항구 입구에 위치한 충청수영성(사적 제 501호)에서 오천항을 조망할 수 있다.

최근에는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지며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조선시대 서해 해군사령부 ‘충청수영성’과 천하절경 ‘영보정’

충청수영성은 충청남도 기념물 제9호로 ‘보령 오천성’으로 지정됐다가 지난 2009년 8월 24일 ‘보령 충청수영성’으로 명칭을 바꿔 사적 제501호로 승격 지정됐다. 지정면적은 12만 5326㎡.

충청도 수군절도사영이 있던 수영(水營)의 성으로 1510년(중종 5)에 축조했는데 구릉의 정상을 중심으로 주변에 성을 쌓아 성 안에서 성 밖을 관망할 수 있게 돼있다.

성 안에는 영보정·관덕정·대변루·능허각·고소대와 옹성(성문의 앞을 가리어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 5개, 문 4개, 연못 1개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진남문·만경문·망화문·한사문 등 4문은 모두 없어지고 서쪽 망화문터의 아치형 석문(石門)만이 남아 있다. 이 성은 해변의 구릉을 정점으로 쌓은 성이어서 바다를 관측하기에 좋은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난 2015년 11월에는 조선시대 서해 해군사령부 충청수영성의 대표시설이면서 다산 정약용이 ‘세상 경치 중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한 누각 영보정이 137년 만에 복원됐다.

영보정은 충청수영성 안에 위치해 천하절경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시는 역사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복원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지난 2011년 영보정 지(地) 발굴조사와 학술조사를 마치고 2013년 실시설계용역, 문화재청 설계승인을 거쳐 문화재전문가의 현장기술 지도를 통해 2015년 복원공사를 완료했다.

복원된 영보정은 이익공(기둥머리에 두공과 창방에 교차되는 상하 두 개의 쇠서로 짜여진 공포)의 팔작지붕 형식으로 정면 6칸, 측면 4칸의 175.44㎡ 규모이며 1504년(연산군 11년) 충청수사 이량(李良)에 의해 창건돼 7차례 중·개수를 거쳤고 1878년(고종 15년) 화재로 소실된 이후 137년 만에 다시 복원된 것이다.

영보정 복원은 충청수영성 대표시설을 복원한다는 의미와 함께 일제 침략기 대부분이 파괴된 충청수영성의 일제 강점기 상흔을 치유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세상에서 호수·바위·정자·누각의 뛰어난 경치를 논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보정(永保亭)을 으뜸으로 꼽는다”고 했으며 채팽윤은 “호서의 많은 산과 물중에 영보정이 가장 뛰어나다”고 했을 만큼 경관이 뛰어나 선비들의 극찬을 받아왔던 누각이다.

한편 영보(永保)는 영원히 보전한다는 뜻으로 천험(天險), 인화(人和), 정관지락(亭觀之樂)을 영원히 보존한다는 의미이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충군우국지의(忠君憂國之意)를 담고 있다.
 
●천년 풍상 변치 않은 절개 ‘도미부인’

우리나라 열녀의 표상으로 전해지고 있는 도미부인은 백제 개루왕(128~166년)때 보령 미인도에 출생, 부부가 수난을 겪기 전까지 도미항에서 살아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소문난 미인에 행실이 남달라 개루왕의 온갖 만행에도 굴하지 않고 정절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삼국사기와 삼강행실도, 동국통감 등에 기록돼 전해져 오고 있다.

보령시는 1990년대 초 오천면 소성리에 도미 부인 사당인 ‘정절사’를 짓고 매년 경모제를 지내오고 있으며 1995년 정부 인증 도미 부인 표준 영정도 제작했다.

성주 도씨 문중이 지난 2003년 경남 진해시의 도미 부부 추정 묘를 보령시로 이장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순교성지 ‘갈매못’

갈매못은 천주교 순교지로 1866년 천주교 박해 당시 프랑스인 다블뤼 주교 등의 효수형을 집행했던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25년 공주 최말구 신부 등이 현지를 확인했으며 현재 순교자기념비, 기념관, 사제관, 수녀원 등이 건립돼 있고 충청수영성(忠淸水營)의 역사성과 연계된 유적으로 충청남도 기념물 제188호로 지정됐다.

지난 2016년에는 병인순교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천주교 대전교구 주최로 순교자 현양대회를 개최했는데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와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 프랑스 보르도 대교구장 장피에르 추기경을 비롯한 67명의 프랑스 순례단과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제5대 조선교구장인 다블뤼 주교와 오메트르·위앵 신부 그리고 황석두 루카와 장주기 요셉 등 갈매못 다섯 성인상 축복식과 순교자 현양미사를 갖기도 했다.

[전국매일신문] 보령/ 이건영기자
leegy@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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