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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29] 두려움이 낳은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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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29] 두려움이 낳은 혐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02.12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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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타인에 대한 수 순 높은 경각심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 보다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접한 이웃의 집에 불이 났을 때 나의 집을 지키는 것은 이웃의 불을 빨리 진화하는 것이 제일이다.

 

입춘이 지나 절기는 벌써 우수(雨水)를 앞두고 있다.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는 겨울 추위가 가고 대지에 봄기운이 돌기 시작할 때다. 우리는 이 절기를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말로 대신한다.

따뜻한 겨울 탓에 남녁의 들판엔 절기에 앞서 새싹이 돋고 양지에는 개불알꽃이 벌써 앙증맞게 피어나고 있다. 곧 있으면 개구리도 겨울잠에서 깨어날 테고 산천엔 진달래와 생강나무 꽃도 다투어 피어날 것이다.

하지만 봄날의 절기와 달리 사람들은 꽁꽁 얼어붙어 빙벽의 절기에 갇혀있다. 중국 우한(武漢)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구촌의 역병으로 번지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얼어붙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의 숫자가 기록 갱신처럼 연일 대서특필되고 휴대폰을 통해서는 안전안내 문자가 매일 이어진다. 여기에 불안감을 부추기는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우리가 접하는 각종 정보들 역시 점점 더 두려움으로 확산되고 자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가급 적 외출을 자제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거나 불가피 할 경우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화됐다. 2015년 메르스 참사를 겪은 학습 효과까지 겹쳐 정부의 시스템과 별개로 개인의 안전에 대한 행동 양식이 체화된 탓이다.

알 수 없는 위험에서 자기보호 본능이 강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자 바람직한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두려움에서 시작된 자기보호 본능이 타인에 대한 적대감으로 집단화되어 표출된다는 점이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중국인 입국 금지 청원을 요구하는 숫자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정부의 중국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대해 정치권에서 마저 ‘굴욕적 사대주의’로 몰고 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유럽국가들에서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가 표면화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극우적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유럽국가들의 정치 상황에서 인종차별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이쯤 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구촌의 정신적 역병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혐오와 편견이 일부 찌질한 부류의 공포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찌질한 편견과 폭력이 집단의 광기가 되어 합리적 이성을 지배하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대표적으로 1923년 일본의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며 재일 조선인 6천여 명을 학살한 것도 두려움과 공포가 낳은 처참한 비극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국경 없는 지구촌 시대에 두려움과 공포가 낳은 근거 없는 편견과 혐오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올 뿐이다.

차분하고 냉정히 생각해보자. 아무리 국내 방역을 철저히 한다고 해도 신종 코로나의 진원지인 중국에서 확산이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안전하겠는가.

국내 12번째 확진자는 일본에서 감염됐고, 16번째 확진자는 태국여행을 다녀온 후 증세가 나타났다. 또 17, 19번째 확진자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학회에 다녀온 후 양성판정을 받은 경우다.

불행히도 글로벌 시대에 바이러스는 국경이 아무런 장벽이 되지 못한다. 지구촌이라는 말은 재앙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용어다.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의 의료시스템 붕괴는 곧 우리의 방역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과거 사스나 에볼라 등 모든 전염병 사태에서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지구촌 시대에 전염병으로부터 숨을 곳은 없다. 이제 인류는 한배에 올라탄 공동운명체이다. 중국의 코로나바이러스가 하루속히 박멸되는 것이 우리가 역병으로부터 벗어 나는 길이다.

전염병 확산이 반복되며 대유행하는 시대에 타인에 대한 혐오는 사태를 악화할 뿐만 아니라 나의 불행으로 되돌 아 올 수밖에 없다.

타인에 대한 수 순 높은 경각심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 보다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럽의 불행이 아시아의 행복이거나, 아시아의 불행이 유럽의 행복일 수는 없듯이 중국의 불행은 나의 불행이 되는 시대다.

인접한 이웃의 집에 불이 났을 때 나의 집을 지키는 것은 이웃의 불을 빨리 진화하는 것이 제일이다.

계절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도 우수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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