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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칼럼] 공무원의 손글씨와 키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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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칼럼] 공무원의 손글씨와 키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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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2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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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前 남양주 부시장

1981년에 8급 공무원으로 경기도청 소속의 농민교육원에 근무하면서 농조 조합장님 교육과정의 소원수리(수료소감)를 담당했습니다.

농조 조합장님들이 써내신 소감문의 내용도 고급지거니와 필체가 유려하여 탄복을 하게 하는지라 선배에게 문의했습니다.

어찌하여 교육생 조합장님의 90% 이상이 필력이 범상하지 아니함이 궁금합니다. 선배의 답변은 이분들이 과거 공무원을 하시고 당시로서 4급 국가직 서기관으로서 군수를 하신 분, 3급 시장을 하신 후에 조합장으로 오신 분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농조 조합장이 되시기 전에 한번은 거쳐야 할 곳이 수원시 파장동에 소재한 지방행정연수원입니다. 공무원에게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 만큼 기관의 명칭도 여러 번 개명되었습니다.

1965년 지방행정연수원, 2005년 자치인력개발원, 2006년 지방혁신인력개발원, 2008년 지방행정연수원, 그리고 2017년에는 지방자치인력개발원으로 간판을 바꿔달았습니다. 명칭이 바뀐만큼 간부공무원에 대한 강의계획은 부단한 변화와 혁신을 반영하였습니다.

필자도 2회 장기교육을 받으면서 마음을 열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고 명강사님 말씀을 정리한 자료집을 2권 발행하여 동료 교육생에게 배부하였습니다.

수원에 소재한 연수원에는 수덕관, 청심관, 목민관 간판을 단 숙소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모름지기 공직자는 수양하고 덕을 쌓고, 맑은 마음으로 임하며 다산선생님의 牧民心書(목민심서)에 따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과거 관선 시장군수를 하시던 선배들이 고뇌의 나날을 보냈을 숙소에서 후배들은 참으로 맘 편안하게 숙식하였습니다.

과거 선배 공직자중에는 업무추진력도 수훈 갑이지만 필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습니다. 실무자로서 일하는데 글씨를 잘 쓰면 요직으로 가고 거기에서 빠른 승진을 거쳐서 관선 군수가 되고 내무부로 전출되어 근무하거나 도청 국장을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흔히 엄마들이 하는 말로 부잣집 아들이 공부도 잘하고 잘생기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는가 하면, 운동도 잘한다고 합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의 이야기는 이미 지나간 강물이나 마찬가지이니 더 이상 꺼내지도 못하지요.

글씨를 잘 쓰는 이들의 호황은 대략 1995년을 전후하여 행정기관에 '1인1PC/ 1인1전화기/ 칸막이 설치'시대를 맞이하면서 불황을 맞습니다. 이제는 PC를 잘 다루고 새로운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혁신적이고 현실에 충실한 공무원이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개인적으로 글씨를 못 써서 요직추천이 무산된 아픈 기억을 가슴에 담고 있지만 이를 반면교사로 삼았고 악필을 이기기 위해 키보드와 친해지는 계가가 되었습니다. 말과 생각보다 자판이 빠른 시대에 남의 손을 빌려 문서를 작성하는 '워드동냥' 을 다니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명필과 달필이 대우받던 시대에서 인터넷의 바다를 넘나들고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분 단위로 찾아내는 정보사냥꾼이 대우받는 시대입니다. 美人薄命(미인박명), 秀才惡筆(수재악필)이 아니라 "컴맹퇴출, 정보우선"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행정이라는 무대에 한석봉 가평원님(가평군수), 추사 김정희선생님의 出演(출연)과 出現(출현)도 필요하지만 장영실과 정약용 선생님 같은 분의 配役(배역)도 필요합니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이강석 前 남양주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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