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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정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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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정치란 무엇인가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0.03.1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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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올봄은 유난히 봄이 와도 봄이 아니라는 말을 쓰기에 적당하다. 코로나19가 새봄이 왔다고 기세를 쉽게 누그러뜨리지 않고 4ㆍ15 총선을 앞두고 꼬이는 정치 상황은 더더욱 봄을 밀어내고 있다. 어느 해 봄보다 매서운 봄이다. 봄의 외침을 몰아내는 여러 상황이 겨울을 그대로 안고 있는 모양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국민은 고달프기만 하다. 마스크 한 장 사려고 대여섯 시간 줄을 서야 하고, 병실이 없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생명을 잃는가 하면, 해외로도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참담한 상황에 처했다.

세계 100여 개국이 기피하는, 인구 비례로 감염자가 가장 많은 오염국가로 전락해 렸다. 착륙을 거부당한 국적기가 회항하는가 하면, 신혼부부들이 억류되고, 중국에서는 교민의 출입을 막기 위해 대문에 각목까지 박았다고 한다. 확진자도 아닌데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수모(受侮)다.국제적인 모멸보다

더 큰 위기는 정부의 방역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저하되는 현실이다. 막연한 낙관론이나 탁상공론으로, 과학적 근거보다는 정치적 고려를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외국에서 일방적으로 홀대받는데 외교부는 수수방관하고, 보건복지부는 국민이 주된 감염원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큰소리치던 마스크조차도 태부족이다.

공항은 그대로 열려 있고, 지역 감염 확산을 막는 적극적인 대책도 찾아보기 힘드니, ‘코로나 사태’가 곧 종식되리라는 믿음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역병은 하루가 다르게 창궐하고, 경제는 마비된 채 기약 없는 공포가 나라를 짓누르고 있다.

코로나19가 만든 불안과 공포로 확증 환자가 급증한 이 소동 속에서 4·15 총선의 시각이 다가오고 있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정치권에서 흩뿌리는 말의 양도 극적으로 증가한다. 그 늘어난 언표가 다 사실이나 진실에 입각한 것이라고 믿을 수는 없다. 말들은 모호함 속에서 떠돌다가 사라진다.

무수한 말의 흩날림 속에서 정치는 있어야 할 자리에서 실종되기 일쑤다. 한 대학 교수의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도 총선 국면에서 불거진 여러 말 중의 하나다. 민주당을 콕 집어 배제하자는 주장은 정치 선동이다. 여기에 발끈한 민주당이 집필자와 매체를 고소했다가 바로 취하하고 자세를 낮춘 것은 그나마 잘한 일이다.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정치에 포획을 당한다. 이는 정치가 우리 삶의 양태를 결정짓는 큰 테두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늘 대중의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다. 정치 화제에 끼어들어 저마다 의견을 쏟는 걸 보면 이를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정치는 어떤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정치권의 갈등과 실정(失政), 비생산적이고 지루한 여야의 정쟁은 정치 환멸을 불러온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선거가 무용하고 정치는 해악이라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선거와 정치 무용론은 거친 논증과 논리의 비약이고, 자칫 우리를 정치 환멸에 빠뜨릴 수가 있다. 다만 이 칼럼이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현대 정치는 기본적으로 말을 바탕으로 한다. 정치는 말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고, 이 말들이 질료적 힘으로 작동하는 공간을 나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누구나 자기 말을 하고, 이 말은 정치의 공간, 즉 자기의 참여/몫으로 돌려받는 근거이다.

정치가 사회적 합의에 의한 힘과 권리의 분배라고 할 때 이 참여/몫을 나누는 실행은 말과 권력의 흐름에 단절과 연속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이 연장선에서 정치란 한 사회의 재화와 권리들, 그 몫의 분배를 구조화하는 장치다. 이것이 정합적 진리와 투명한 공정성을 얻어야만 정치는 사회를 통합하는 바탕으로 신뢰를 얻는다.

곧 다가올 4ㆍ15 총선으로 정치권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가운데 돌연 변수로 등장한 `코로나 사태`로 어수선하다. 중국 후안성에서 발생한 신종 전염병 `코로나19`는 중국, 한국, 일본,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전염병을 차단하기 위해 한국인의 입국을 통제하는 나라가 100여 개국에 이른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은 코로나19가 4ㆍ15 총선에 미칠 영향을 아전인수 격으로 역이용하는 추태까지 보이고 있으니 한심하다. 여당은 남 탓으로 야당은 집권당의 무능으로 몰아세우고 있으니 역시 정치는 시대적 상황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치국의 기본방향과 명확한 정치 지도자 상을 기록한 사서 정관정요(貞觀政要)는 중국 당나라 태종인 이세민이 일러주는 정치 지도자의 길잡이 같은 지침서이다. 정관(貞觀)은 당태종의 연호로 당고조에 이어 23년(627~640) 간 당나라를 다스린 영명한 군주 이세민의 치국정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사서이자 경서다.

정요(政要)는 정치의 요체로, 정관정요는 바르게 보고 살펴서 하는 것이 정치의 요체라는 뜻이다. 정관정요의 저술 형식은 주로 임금과 신하 사이의 대화와 문답을 통해 국사를 결정하는 것으로 그 대화 속에는 인물의 성격, 정치 성향, 특징, 판단력, 덕과 풍모를 살펴볼 수 있게 구성돼 있다.

이러한 기술 형식은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 살아 있는 정책 결정의 모습을 통해 후대 정치가들이 따라 배우도록 모범을 삼도록 한 것이다. 당태종과 신하 위징, 방현령, 두여회 등 45명의 신하들이 말한 내용을 주제별로 10권 40편 258장 8만여 자로 편찬했다.

정관정요에는 당나라 건국부터 황실의 흐름, 민생의 변화, 인물의 활동 등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놓았다당태종은 재위 23년 동안 전반기 11년은 황금기를 이룬 제왕답게 정치를 잘했지만 후기에 들어서는 사치와 방종으로 겸손에서 독선으로, 허기납간(虛己納諫)에서 점차 불호직언(不好直言)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 자신 스스로 자신이 변해가는 모습을 한탄했으니 정치가 얼마나 타락하기 쉬운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는 나 스스로 재위에 있은 지 오래돼 그동안 선하지 못한 면이 많아졌다. 비단과 주옥의 사치스러운 물건이 내 앞에 자꾸 쌓이고, 궁실의 화려함을 거부하지 못하는구나. 견마와 사냥 매가 멀리서 바쳐져 오고, 사방으로 놀이 가고 싶은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며, 맛난 음식을 싫어하지 않는구나. 이 모두 나의 과실이다. 이러한 내 모습을 그대들은 따르지 않도록 하라."(정관정요: 임동석 역주, 동서문화사)자신의 타락한 모습을 후세의 교훈으로 삼으라는 자탄의 반성문이다.

이처럼 정치는 권력을 쥔 자가 그 권력의 힘을 잘못 행사하면 국사가 문란해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며, 민심은 흉흉해진다. 리더의 곁에 직언을 간하는 충신은 설자리를 잃고, `지당`을 입에 달고 있는 간신 모리배와 재방들이 인의 장막을 치게 된다. 결국 그 권력은 거대한 민심의 이반으로 무너지고 나라마저 망국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권력은 치자와 피치자 간의 도전과 응전의 긴 투쟁 과정이었다. 당태종이 자신의 방종을 자탄한 말에서 보듯이 자신부터 다스리는 것이 정치의 요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는 그냥 빈말이 아님을 지난 역사가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다.

어디 정치권력만 그러하겠는가. 이 사회 모든 기업가, 사회 지도자. 공직자, 학자 등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조직의 리더가 그 조직 성원을 바르게 이끌어가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바른 것을 보고 살피는 정관(貞觀)을 외면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나라 안팎이 `코로나 사태`로 무척 혼란스럽고 뒤숭숭하다. 국민 모두가 전전긍긍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위정자들은 당태종의 신하 위징이나 두건덕처럼 자신 있게 국민을 위해 윗사람에게 바른말을 해주고, 정치가들은 정쟁을 멈추고 국민과 아픔을 함께하면서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관정요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과연 올바른 정치란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 올봄에 부는 정치 바람에서 봄은 없다. ‘봄이 와도 봄이 아니다’는 말에 한기를 느껴야 하는 날들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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