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칼럼] 공직자의 PC와 공무원의 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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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칼럼] 공직자의 PC와 공무원의 전화기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0.03.2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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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前 남양주 부시장

타임머신을 타고 1985년 시청과 군청, 도청의 사무실로 가보면 그 모습은 이러합니다. 우선 계장님 양수책상을 중심으로 차석과 삼석이 비행기 대형으로 양 날개를 달고 있고 그 아래로 7급 8급의 책상이 도열해 있습니다. 천정에서 내려다보면 항공모함이 동해바다를 항해하는 형상입니다.

그리고 책상에는 검은색 전화기가 2대1조로 배치되어 총 8대가 있지만 전화번호는 달랑 2개입니다. 행정전화 번호는 2121, 4121입니다. 이 전화기는 계장님 책상위에서 시작되어 서무담당에게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흔히 앞 번호로 2번 전화 4번 전화로 칭합니다.

그러던 1980년대 초 어느 날 경기도청 문서계에 중앙부처 과학기술처로 추정되는 기관에서 택배를 보내왔습니다. 우편과 소포는 잘 알고 많이 이용했지만 택배라는 용어는 생소한 시대였습니다. 택배에는 종이 박스와 스티로폼으로 곱게 포장된 제품이 들어 있었는데, 이 물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컴퓨터’라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화면도 있고 줄이 매달린 타자기 자판도 있고 네모난 도트프린터가 들어 있습니다.

이 물건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어느 부서에 주어야 하는 택배인가? 이 해괴한 기계, 컴퓨터를 어느 부서에 주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컴퓨터라는 말속에 '계산하다'라는 말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해괴한 이 기계는 통계부서에 배정되었습니다.

어느 날 기획관리실장이 문서결재를 하던 중 문서 요지가 인쇄된 것을 발견합니다. “아니 이 사람아! 얼마나 수용비 예산이 많다고  결재문서 요지를 인쇄해서 붙이는가?” “아닙니다 실장님, 저희 과에 컴퓨터라것이 있는데 이 기계에 단어를 치고 한자로 바꾸면 이렇게 인쇄되어 나옵니다.” “그러하다면, 이 기계는 보고서를 많이 만드는 기획부서에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후 실장님의 지시에 따라 장비가 옮겨지고 기획부서에 이 컴퓨터를 전문으로 하는 직원이 배치되고 심oo 직원이 서울 본사에 가서 4주 교육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 장비는 기획계장님이 직할로 관리합니다. 어느 날 기획계장이 중요 보고서 초안을 기안하여 워딩을 부탁하니 50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인쇄된 개조식 보고 문서를 다시 검토합니다. 문장이 길면 줄이고 짧은 문장은 길게 늘려 다시 워딩을 부탁합니다. 이번에는 5분 만에 수정을 완료하여 계장님께 넘겨줍니다.

밖에 나가서 저녁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 보고서를 다시 검토한 후 최종 보고하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기획계장과 차석은 5분 만에 다시 가져온 인쇄된 보고서를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좀전에는 1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5분도 안 걸리나?” “아~ 예, 이 기계 속에는 문서를 저장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한번 작성한 문서를 기계가 기억을 합니다. 기계가 문서를 기억합니다. 부르면 강아지처럼 쪼르르 문서가 달려온다는 말이지? 그 기계 속에 무슨 조화가 들어있기에 종이에 인쇄할 글이 들어있다가 부르면 나오고 들어가라면 애완견처럼 제방으로 들어간단 말인가요. 수십년간 타자기에 익숙한 당대의 공무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컴퓨터였습니다.

결국 1994년 전후에 드디어 ‘1인1PC시대’를 맞이하고 동시에 찾아온 ‘1인1전화기 시대’와 함께 행정의 혁신시대를 맞이합니다. 발령장을 받고 가보면 PC가 주어지고 1인 1전화기가  있지만 거의 쓰지 않고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하는 요즘의 젊은 공무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퇴직 공무원의 오래된 이야기였습니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이강석 前 남양주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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