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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힘으로 흥한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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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힘으로 흥한 자는...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0.04.3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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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1994년 중간선거에서 미국 공화당은 대승을 거뒀다. 하원에서 무려 54석을 더 얻어 40년 동안 하원을 지배해온 민주당 시대를 끝냈으며, 상원에서도 10석을 더 얻어 10년만에 상원 지배권을 탈환했다. `공화당 혁명'이라 불리어진 이 거사의 한 가운데는 역사학 교수출신의 보수 강경파 뉴트 깅그리치가 있었다.

‘아메리카와의 계약’이라는 보수쟁책 10가지를 내건 깅그리치와 공화당 매파들은 중심을 잃고 흔들거리던 클린턴 행정부를 맹렬하게 질타한 끝에 혁명적 승리를 얻어냈다. 중간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뒤 하원의장으로 등극한 뉴트 깅그리치는 여소야대의 구조 속에서 사실상의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깅그리치는 다음 대통령의 야망도 감추지 않았다.

당시 분위기로 96년 대선에서 클린턴의 재선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터다. 깅그리치와 그를 따르던 매파들은 다수의 힘을 믿으며 자신들의 보수 이데올로기를 거침없이 밀어부쳤다. 95년말 새해 예산안 협상 때 이들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아 연방정부가 부분폐쇄되는 이변까지 벌어졌다.

그것은 숫자를 과신한 오만이 만들어 놓은 파멸의 덫이었다. 깅그리치의 정치적 몰락이 시작됐으며, 이듬해 대선에서 클린턴은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 재선됐다. 다소 장황하게 미국 정치얘기를 했다. 역사적 배경이나 정치문화가 판이하게 다른 터에 미국 정치상황을 한국에 빗대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 살아가는 일에는 보편성이라는게 있어, 뉴트 깅그리치의 몰락도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숫자와 힘을 믿는 강자의 논리, 오만의 행태가 파멸의 덫이 된다는 것이다.

선거는 세상을 팽팽히 당겼다가 놓는다. 180 대 103 대 6. 1987년 6공화국 체제 출범 후 180석 거여(巨與)가 총선으로 등장한 건 처음이다. 보수야당이 지역구 100석을 얻지 못한 것도, 지역당·재벌당·진보정당 할 것 없이 제3정당이 한 자릿수로 끝난 것도 처음이다.

지역구 지도에 3개의 당색만 남은 것도 전례 없다. 수도권·충청에서 파랑(더불어민주당)에 대패한 핑크(미래통합당)는 16년 만에 영남과 용산·분당을 더한 ‘강남 5구’에 다시 갇혔다. 노랑(정의당)은 원내 진출 16년 만에 고양의 외딴섬이 됐다. 민심이 “무섭다!” 앞날이 “두렵다!” 이긴 쪽도 진 쪽도 선대본부 해단식은 다 비장했다.

‘당 현종이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것은/ 허심탄회하게 간언을 수용했기 때문이네/ 황금 상자를 길이 두고 거울로 삼았던들/ 행차가 어찌 서촉(西蜀)까지 이르렀겠나.’고려시대의 문신이며 명문장가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는 개원천보영사시(開元天寶詠史詩) 금함(金函)이다. 당나라 예종을 이어 즉위한 현종은 연호를 개원(開元)이라 고친 뒤에 요숭, 송경, 장구령과 같은 어질고 뛰어난 인재를 재상으로 등용하여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여파로 혼란에 빠진 국가를 안정시키고 30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끌었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서 말하는 개원의 치세(開元之治)이다. 개원 연간 동안 현종은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신하의 상소가 올라오면 그 가운데 긴요한 것을 골라 황금으로 장식한 상자 속에 넣어 두고 수시로 꺼내 읽으며 자신을 채찍질하였다고 한다.하지만 즉위한 지 30년이 되어 연호를 천보(天寶)로 바꾼 뒤로는 양옥환(일명 양귀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며 국정을 게을리하기 시작하였다. 이 틈을 타서 이임보, 양국충과 같은 간신들이 국정을 농간하더니, 양귀비의 양자가 되어 현종의 총애를 독차지하던 절도사 안녹산이 난을 일으키니 장안은 순식간에 점령되었다.

목숨만 부지한 현종은 지금의 중국 성도(成都)인 서촉으로 피난하고 나라는 성당(盛唐)시대에서 기울기 시작한다.사람은 자신의 실패와 잘못을 부끄러워하며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다. 역사에서 성공하고 잘한 행위만을 자랑스러워하고 패배와 잘못은 숨기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발전을 바라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성공을 자부하고 안주하는 데서 발전하기보다는 과거의 잘못을 통렬히 반성하고 고치는 데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고칠 것이며, 잘못이 고쳐지지 않는데 어떻게 나아질 수 있겠는가.

4·15 21대 국회의원 총선의 결과를 보면 보수 세력이라고 자칭하던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궤멸에 가까운 참패를 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을 넘겨 헌법개헌을 제외한 모든 입법 활동에 있어 일방적 추진이 가능해졌다. 이는 향후 국내의 입법 작용이나 대통령의 정치행위의 결과가 오로지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귀결된다는 점이다. 2년 후 국가상황과 여당의 실정은 대선을 통해 국민이 평가할 것이다.

총선 후 맞는 집권 2기, 거여는 세 가지를 말했다. 이낙연은 모든 강물이 모이는 ‘낮은 바다’가 되겠다 했고, 이해찬은 모두 지켜보는 ‘투명한 어항 속’에 있음을 일깨웠다. 당선인들은 너나없이 ‘일꾼으로 보내달라’고 호소했었다. 주류는 약속의 무거움을 지켜야 한다. 21대 국회 당선증이 배부되자마자 개헌과 보안법, 검찰총장 거취를 불 지피는 사람들이 있다. 거여의 교훈을 잊은 조급증이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여권은 승리에 도취돼 독선의 정치 대신 협치와 상생의 정치를 해야 한다. 통합당은 비록 선거에 실패했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참패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구현해야 하면 된다. 현 정부의 독선과 독주에 맞서싸울 합리적이고, 강력한 대안세력을 원해왔던 것은 수십년의 정치역사가 잘 말해주지 않던가.

벌써부터 총선결과를 등에 업고 오만한 자들의 막말이 쏟아진다.블랙홀을 건드리는 망집(妄執)이다. 서둘러도 코로나 민생은 1년을 넘길 수 있다. 그 성적에 따라 주류는 다시 확장·반전의 교차점을 맞고, 그 너머에서 후년 춘삼월 대선이 시작될 테다.

여도 야도 한 번씩 반성한 게 진리다. 겸손한 권력만이 큰 국정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현종이 서촉까지 피난하고 나라가 망한 역사적 사실이 새삼 떠오르는 현실이다. 숫자를 과신한 오만함이 나라들의 흥망 성쇠에서 보는 역사의 가르침은 냉혹하다. 힘의 과신은 쇠락의 덫이 되며, 그리하여 힘으로 흥한 자는 힘으로 망한다는.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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