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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칼럼] 보도자료와 식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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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칼럼] 보도자료와 식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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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0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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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前 남양주 부시장

행정기관이나 기업에서 언론에 내놓는 보도자료는 언론 보도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보도를 위한 자료'입니다. 혹시 보도자료를 잘 쓰기 위해 시간과 정열을 소비, 허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전에서 보면 제목부터 소제목, 본문 내용이 기사문으로 만들어 배포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방식이 정도, 지름길인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도자료는 한정식에서 접시에 담아 소스로 그림을 그려 멋을 낸 후 식탁 위에 따끈하게 올려진 요리가 아니라, 농수축산물시장에서 구매하여 주방에 방금 도착한 아주 신선한 식재료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무우와 배추와 파, 마늘, 붉은 고추 등이 도착하면 아마도 보통의 주방장은 열무김치, 배추김치, 나박김치 등을 상상할 것입니다.

그런데 상상력이 앞서고 창의력이 좋은 주방장이라면 이 재료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하고 무엇을 냉장할까를 생각할 것입니다. 즉, 주어진 재료에서 일반적인 음식을 상상하는 주방장이 있고 어떤 재료를 특화해서 새로운 요리를 창조하겠다는 조리장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공무원들은 잘한다는 생각으로 기사문 형식의 '완성된 요리'를 제공하면 전문 언론인들의 시각과 능력을 바탕으로 5가지 재료를 활용하여 5가지 이상의 기사를 창조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리 만들어 한 그릇을 제공하면 생각 많은 언론인들의 기사 창의력이 말살된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보도자료 앞머리에 기관장의 연설문 핵심을 올리고 행사의 성격과 추진 이유는 마지막에 넣는 실수를 자주 범해왔습니다. 기자와 독자들이 원하는 보도내용은 행사의 성격과 그것에서 자신이 얻을 것이 무엇인가에 관심이 높습니다. 기관장의 연설은 기사 말미의 참고자료인 것입니다.

독자는 제목을 보고 사건을 이해할 것이고 궁금하면 첫 문장을 읽고 그래도 부족하면 다음 문장으로 눈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무원들은 기관장의 말씀을 앞에 싣고자 하고 기자는 마지막으로 돌리거나 아예 빼버리곤 합니다. 언론인과 공보실 공무원과의 고민이 충돌하는 현상을 여기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언론인은 '기사를 써 주었다'고 합니다. 공보실 공무원이 원하는 대로 편집부에 넘겼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늘 보도자료는 식재료가 되기도 하고 요리가 되기도 합니다. 식재료는 기자들이 다양한 기사로 발전시킬 수 있지만 요리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그릇에 담겨 식탁에 올려진 음식일 뿐입니다.

주방장실 옆 홀에서 먹는 탕수육과 오토바이로 달려와 정문과 경비실 문 2곳을 어렵게 통과한 후 아파트 15층에 도착한 짬뽕의 맛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배달된 짬뽕은 이미 불어서 면발은 탱글함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탕수육으로 배달받은 기자의 선택권은 ‘찍먹과 부먹’이 있을 뿐입니다. 기자를 요리사, 조리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부의 불평을 감수하면서 완성된 보도자료가 아니라 미완의 정책자료를 제공해야 합니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이강석 前 남양주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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