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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트로트에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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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트로트에 봄이 왔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0.05.2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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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의 폭발적 시청 열기에 이은 ‘놀면 뭐하니’의 ‘유산슬’, ‘트롯신이 떴다’ 등 갑작스러운 트로트 프로그램의 인기로 늘 변방에 위치했던 트로트가 중심으로 솟아오르고 있다. 그동안 소외되었기에, 즉 젊은 음악의 기세에 밀려 덜 비쳤기에 도리어 ‘반가웠던’ 걸까.

중장년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미스터트롯’을 열렬히 봤다는 한 50대 후반의 가장은 “그동안 매체에서 접하는 음악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들이라서 힘들었다”며 “이제야 모처럼 노래다운 노래를 듣는다”고 기뻐했다.

물이 오른 트로트는 젊은이들마저 끌어안을 기세다. 청년층은 어릴 적부터 힙합, 알앤드비(R&B), 전자댄스음악 그리고 K팝의 세례를 받고 자란 세대다. 장윤정의 ‘어머나’, 박상철의 ‘무조건’,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결코 트로트를 자기 세대의 음악으로 여기진 않는다. 이런 ‘거리두기’가 최근 깨질 것 같은 양상이다.

주변 이곳저곳에서 하도 트로트를 운운하다 보니 절로 거리가 가까워진 느낌이라고 한다. 1980년대 후반 주현미와 현철이 가수왕상을 연거푸 수상하면서 트로트는 마침내 기사회생의 용트림을 한다. 심수봉과 김수희의 분전도 컸다. 1990년대에는 현철, 태진아, 송대관, 설운도의 4강 체제가 구축되었지만 트로트 시장은 왜소해졌다.

이 판을 바꾼 인물이 2004년 TV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오른 ‘어머나’의 장윤정이었다. 곧바로 박현빈, 박상철, 홍진영과 같은 젊은 가수가 속속 등장하면서 트로트는 다시 숨통을 틔웠다. 그렇다고 대중가요의 대세를 장악한 것은 아니었고 2010년대에는 또다시 기가 빠졌다.

이번 이상 열기는 면면히 저 밑에서 흐르는 트로트의 역사적 힘에 따른 것이다. 그 ‘서민적 흡수력’은 굉장하다. 막 끝난 21대 총선에서 여야·무소속 후보 가릴 것 없이 상당수가 캠페인송과 로고송으로 트로트를 활용한 것을 보라. 압도적 기술문명에 시달리는 사람들한테 ‘고향’ 같은 음악이 트로트 아니겠는가.

요즘 국내 음악의 대세는 K팝의 인기를 위협하는 트로트다. 트로트 관련 TV프로그램이 줄을 잇고, 라디오를 틀면 트로트가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아이돌이 점령했던 TV예능프로에는 지금까지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쏟아 나오는지 궁금할 만큼 많은 젊은 신예 트로트 가수들이 등장하고 있다. 나이든 세대들만 듣는다며 음악계에서 변두리 음악으로 취급돼 밤무대로 밀렸던 트로트가 당당히 주류로 떠오른 것이다.

트로트는 100년 역사를 가진 음악 장르지만 주로 동시대 삶의 애환을 담은 노래처럼 굴곡졌다. 트로트는 일제치하였던 1920년대 처음 등장한 데다 일본 대중음악 엔카의 음계와도 비슷해 일색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해방이후 미국 팝에 밀리던 트로트는 1960~70년대 이미자, 남진, 나훈아 등이 인기를 되살렸지만 일본색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면서 ‘뽕짝’으로 비하돼 불리기도 하고, 일부 노래는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트로트(Trot)는 영어 해석으로 ‘빠르게 걷다’는 뜻이다. 미국과 영국에서 4분의 4박자로 추는 연주리듬인 폭스트로트(fox-trot)를 차용하면서 한국식 트로트의 바탕이 됐다는 견해도 있다. 일본 엔카 역시 폭스트로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두산백과사전에 트로트는 강약의 박자를 넣고 독특한 꺾기 창법을 넣으면서 독자적인 가요형식으로 완성돼 지금의 트로트가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국내 음악장르에서 ‘B’급이라는 치욕 속에서도 트로트의 생명력은 질겼다. 갖은 논란과 배척을 당했지만 현실세계에서 서민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맴도는 힘을 다져왔다. 한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구성도, 경쾌하기도 한 멜로디와 나의, 우리의 얘기일 것만 같은 가슴 파고드는 가사는 서태지의 열풍과 힙합, K팝의 전성시대에도 살아남게 했다.

마침 송가인과 임영웅 같은 발군의 인물이 등장했다. 젊은 층도 호응할 실시간 차트의 빅 히트곡이 받쳐준다면 음악 판을 호령하는 진정한 열풍이 계속될 것이다. 서민 대중 저 아래로 파고드는 ‘물밑사랑’의 트로트가 2020년, 1970년대 초반 이래 가지지 못한 ‘대중가요의 대표성’ 획득을 40년 만에 눈앞에 두고 있다. 트로트에 봄이 왔다.

최근 밝고 흥겨운 노래가 가세하면서 가히 전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 장르로 부상했다. 유행은 돌고 돈다. 부디 문화산업이라는 미명하에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다 삶의 애환이 쏙 빠진 알맹이 없는 트로트가 되지 않기 를 바라본다.

이런 자신감의 회복이 트로트 열풍에 그치지 않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과거 일제치하와 6.25 같은 국난을 겪을 때 우리 국민이 가요를 통해 애환을 달래며 다시 일어섰던 것처럼. 아울러 미증유의 위기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는 벅찬 소임을 풀어나가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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