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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38] 옳은 말도 무시되는 진중권의 벼린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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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38] 옳은 말도 무시되는 진중권의 벼린 말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06.17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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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비아냥거리지 않고, 저급한 표현을 동원하지 않아도 비판의 대상이 아파할 수 있는데도 굳이 벼린 언어로 상대를 찌르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피를 보고 싶은 적개심이고 증오다.

요즘 들어 진중권 씨(전 동양대 교수)만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 있을까 싶다. 그가 내뱉은 한 마디 한 마디는 생중계되듯 언론을 통해 세상에 나오고 있다. 일찍이 이토록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평범한 인물도 드물다.

정치권에 대한 진 씨의 비평은 일기예보를 하듯 매일같이 보도되고, 그도 이러한 상황을 즐기는 듯 매일 쏟아낸다. 하긴 자신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언론이 받아주고, 또 화제가 되어 국민들에게 알려지니 즐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갈수록 표현이 거칠어진다. 비아냥의 수위는 오르고, 언어를 구성하는 단어 역시 자극 적이 되어 간다. 마약중독자가 점차 마약의 양을 늘려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누군가를 증오하고 비난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평범을 거부하는 그의 언어는 충분히 대리 욕구를 충족할 만하다.

언론이 그의 말을 어록처럼 보도하는 것도 시청자와 독자들을 위한 대리만족 서비스에 가깝다. 물론 그가 내뱉은 말들이 모두 감정의 배설물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재치 있거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가치 있는 말도 있지만 표현의 주 무기는 독설이다.

“내가 뭘 얘기만 하면 ‘국회의원 되셔야 되는데’ 당연하게 얘기를 하는데 내가 왜 국회의원 나부랭이를 해야 하나. 비록 돈은 덜 벌지만, 내 정직한 노동으로 산 17평 빌라가 그들이 투기해 번 것보다 훨씬 더 값어치 있다고 생각하며 산다”고 했다.

진 씨의 말 중 그래도 점잖은 편에 속한 이 말은 그가 며칠 전 모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이다. 국회의원들을 싸잡아 하찮게 여긴 데다 투기꾼들로 정의했으니 이 말을 들은 국회의원들은 충분히 열 받을 만하다. 반면 정치를 혐오하고 국회의원들을 멸시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끈하게 와 닿는 시원한 말이기도 하다.

굳이 진 씨의 말에 의미를 둘 필요를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가 정치비평의 이름으로 내뱉는 말은 더 나은 정치를 위함이라 믿는다. 자신의 말이 기사화 될 줄 알면서도 내뱉은 ‘국회의원 나부랭이’나 ‘투기꾼’은 더 나은 정치를 위함인가, 아니면 그저 울리는 꽹과리 소리에 불과한가. 또 ‘국회의원 나부랭이’를 뽑은 유권자는 얼마만큼 하찮아지는가 생각해볼 일이다.

진 씨 스스로가 국회의원들보다 더 정직하고 더 가치 있게 살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야 자유이지만 그러한 자유로운 생각을 입증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이유 없이 멸시해야 할 필요는 없다.

비아냥거리지 않고, 저급한 표현을 동원하지 않아도 비판의 대상이 아파할 수 있는데도 굳이 벼린 언어로 상대를 찌르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피를 보고 싶은 적개심이고 증오다.

오늘의 대한민국 정치에, 여의도에 필요한 것은 적개심이나 증오가 아니다. 이미 그러한 적개심과 증오가 여의도 천장을 뚫고 지붕에까지 넘쳐나고 있다. 물론 그러한 표현을 쓰지 않으면 말의 장사가 잘되지 않겠지만 말 장사가 잘 된다고 해서 그게 정직한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에 앞서 진 씨는 ‘똥개설전’으로 그의 이름을 높이기도 했다. 지난달 15일 미래통합당이 주최한 보수 재건 관련 토론회에서 홍준표 전 대표를 향해 “당의 대선 후보까지 지낸 분이 똥개도 아니고 집 앞에서 이렇게 싸우느냐”고 몰아세웠다.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막말이 미래통합당의 패인 중의 하나로 꼽힌 당의 재건 관련 토론회에서 그는 주저 없이 막말을 내뱉었고, 막말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홍 전 대표 역시 “자중하라. 분수도 모르고 자꾸 떠들면 자신이 X개(똥개)로 취급 당할 수 있다”고 응수했다.

대선 후보였던 인물과 맞붙었으니 그로서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며칠 전에는 “문재인 대통령은 남이 써준 연설문을 그냥 읽고 탁현민이 해준 이벤트를 하는 의전 대통령이라는 느낌이다. 참모들에 의해 만들어진 느낌”이라고 하여 논란을 낳기도 했다.

여기서도 그는 청와대 신동호 비서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형도 시인의 ‘빈 꽃밭’이라는 제목의 시를 올려 진 씨를 빗대어 비판했다는 해석이 나오자 답 시를 통해 예의 ‘똥’을 꺼내 들기도 했다.

‘저토록 옳은 얘기를 어쩌면 저렇게 싸가지 없이 할까’ 유시민 씨(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의원이 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대놓고 했다는 이 말은 지금도 유 씨의 성격을 규정하는 말로 따라다니고 있다. 진 씨가 반면 교사해도 될 성싶다.

진 씨의 날 선 단어는 건전한 비판과 토론이 필요한 우리의 정치권은 물론, 그의 재능을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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