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광의 세상보기] 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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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광의 세상보기] 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0.06.2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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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광 경기민주넷 회장/ 前 경기 광주시의회 부의장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실수나 잘못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실수를 하면 그것을 반성하고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잘못을 줄여가야 한다. 개인이든 단체든 반성과 개선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실수가 되풀이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실수로 인정하지 않는다. 의도나 고의성을 의심한다. 게다가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에만 급급하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염치(廉恥)가 없다’는 말을 쓴다. 염치의 사전적 의미는 ‘부끄러움을 살피지 않는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과 개선의 노력이 없이 ‘뻔뻔한 자세를 고수하고 있을 때’를 쓰는 말아다. 뻔뻔한 자세를 고수하는 모습을 접하면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은 분노가 쌓이게 되고 급기야 감정이 표출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염치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동기유발자’인 것이다.

나는 봉건적 사회제도를 찬양할 뜻은 추호도 없지만 불과 12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출신성분을 따지는 신분제 계급사회였다. 당시에는 ‘양반 체면에~~’라는 말을 많이 썼던 것으로 안다. 체면(體面)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는 ‘남을 대하는 관계(關係)에서, 자기(自己)의 입장(立場)이나 지위(地位)로 보아 지켜야 한다고 생각되는 위신(威信). 체모. 면목(面目). 모양(模樣)새’라고 되어 있다. 당시 사회의 지도계층은 한마디로 체면을 지키기 위해 염치 있게 행동하고 부끄러운 일을 사전에 피하고자 보편적 가치규범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이가 많았던 세상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파렴치(破廉恥), 몰염치(沒廉恥)한 행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 국민은 약 35년간 일본제국주의의 통치를 당했다. 그 기간 동안에 일어난 일제의 파렴치한 행위는 이루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얼마 전 뉴스를 뜨겁게 달군 ‘위안부 할머님’은 85년이 지났는데도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한마디 듣지 못한 상태다. 일본정부의 염치없는 모습이 우리 국민과 위안부 할머님, 정신대 할머님, 강제징용자와 그 후손들에게 여전히 분노를 쌓이게 하고 있다.

파렴치한 행위는 일제강점기 때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우리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국민에게 발포를 명령한 최고책임자가 누구인지 지금도 모른다. 당시 정부나 권력을 차지한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지도층 인사 중 그 누구하나 제대로 사과한 사람이 없고, 진실을 고백한 사람도 없다. 최근의 일이지만 2014년 세월호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정부나 단체는 늘 염치 있는 자세를 견지해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설령 실수와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솔직하고 투명하게 국민 앞에 진실을 공개하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책임질 일은 기꺼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의 신임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국민을 위한 정부, 국민속의 국가로 나가는 첫걸음이다.

서양의 오랜 전통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사회 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의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통이다. 영국의 고위층 자제들이 다니는 ‘이튼칼리지’ 출신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앞장서 참전한 일화는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 사례로 꼽힌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사회 지도층 인사의 엄격한 도덕성과 솔선수범이 계층 간 갈등의 해결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관을 쓰려는 자 그 관의 무게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서양속담이 있다. 사회 지도층 인사는 필부필부(匹夫匹婦)와 달리 엄격한 도덕성과 솔선수범의 책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근자에 뉴스 보도를 보면 자신이 쓴 관(冠)의 무게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지도층 인사도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는 아니더라도 염치는 있고, 체면은 지킬 줄 아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사회지도층 인사라면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적어도 그분으로 인해 그 분의 주변 분들이나 우리 국민이 부끄러워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박해광 경기민주넷 회장/ 前 경기 광주시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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