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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칼럼] 색바랜 개근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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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칼럼] 색바랜 개근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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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0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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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前 남양주 부시장

경기도청 현판과 의회 현판이 고철로 사라지기 직전에 구출했다는 자랑을 여러 번 한 바가 있습니다. 도청을 개방하고 도민들이 언제든지 방문하실 수 있는 곳이라는 취지로 도청주변 철조망과 담장을 헐어내고 마지막으로 정문에 세워진 대리석 기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가까스로 동판이라도 구한 일에 대한 자화자찬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트북안에 저장된 1개월간 작업한 강의자료 PPT 125매 중 105매를 지워버리고는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노트북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스스로 지운 자료를 복원해보려 노력했지만 쏘아버린 화살처럼, 업질러진 음료수처럼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사건을 설명드리면, 드라이브에 저장된 파일을 바로가기로 초기화면에 연결해 둔 것입니다. 그리고 실수로 초기화면에서 파일하나를 더 복사하면 되는 줄 생각하고 복사한 파일을 20장으로 줄여서 저장하였는데 이는 초기화면으로 끌어온 ‘바로가기’이니 본체의 드라이브에는 하나의 파일이 있었던 것이고 결국 초기화면의 바로가기만 2개가 생성되었으니 작업한 125장의 파일 중 20장만 남고 105장은 삭제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10여일 전에 어떤 방법으로 이 자료를 스마트폰에서 읽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딸아이에게 자초지정을 말하니 5분 정도 스마트폰을 검색하여 폰에 저장된 파일을 찾아냈습니다. 고맙다는 뜻으로 9,999원을 인터넷으로 송금해 주었습니다. 이 자료가 10,000원의 가치가 있다면 나에게는 1원의 지분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다시 작업을 보충한 후에 노트북과 USB 등 몇 곳에 분산배치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보관의 중요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1439년(세종21)7월 경상도 성주와 전라도 전주에 史庫(사고)를 더 지어 실록을 보관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내사고인 춘추관 실록각과 외사고인 충주, 전주, 성주의 사고가 정비되어 4사고(史庫)가 운영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리고 전주 사고본만 병화를 면하였다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중요한 자료는 이메일에 한 번 보내놓거나 USB, 클라우드 등 적정한 곳에 보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미 우리나라 은행들도 저녁에 일을 마치면 모든 데이타를 모아서 멀리 산속 지하에 설치된 전산기로 보낸다고 합니다. 은행 본점에서 화재나 지진 등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중요한 자료는 산속에 설치된 안전한 전산기 속에서 밤을 지내고 휴일을 평온하게 지도록 한 후 다음날 아침 다시 그 자료를 받아서 업무를 한다고 합니다.

자료보존의 중요성은 다산 선생님의 하피첩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강진군 다산초당에서 귀양생활을 하시면서 아들과 딸에게 보낸 편지와 그림을 보관해오던 종손이 을축대홍수(1925년)때 죽음을 무릅쓰고 지켜냈지만 6.25전쟁중에 분실하였고 다시 수원에서 할머니 폐지수집 손수레 위에 올려진 것을 건축가가 다른 폐지로 대체하여 주고 입수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TV진품명품에서 1억원 평가를 받은 후 사라지고 은행창고에서 발견된 후 경매에서 7억5000만원을 쓴 국립민속박물관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보물(1683-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65년 초등학교(초등)때 받은 개근상장의 모서리가 변색된 것을 보고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생각했습니다. 공직 초임발령장도 색상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42년전에는 희고 밝은 캔트지라는 종이였는데 2018년 경기도청에 기증할 당시에는 살짝 색이 변하였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오늘 공직자들이 취급하는 작은 자료가 훗날에 소중한 사료가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든 공직자들도 지금 관리하는 자료가 훗날에는 더 귀중한 역사인 것에 공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이강석 前 남양주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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