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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41] 삶이라는게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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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41] 삶이라는게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07.15 09: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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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그들은 이제 없지만 그들이 살아서 남긴 흔적만이 우리 곁에 남아 존경과 비난이 대치하는 극단의 평가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두 사람이 죽었고 두 쪽으로 여론이 갈렸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 한 복판에 인간의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9일 서울시장이던 박원순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이틀 뒤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육군 대장이었던 백선엽이 죽었다.

그들은 이제 가고 없지만 그들이 살아서 남긴 흔적만이 우리 곁에 남아 존경과 비난이 대치하는 극단의 평가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두 사람의 죽음은 인간의 삶이라는게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하는 실체적 확인이자 삶의 두려움이다.

박 시장의 삶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었다. 그는 3선의 서울시장으로 삶을 끝냈지만 여느 권력자와 달랐다.

그는 시퍼런 권력을 부드러운 솜털로 바꿔 권력을 행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시장의 자리는 시민을 위한 봉사의 자리’라는 교과서적 해석을 시민들이 믿게끔 했고, 권력에도 사람의 체온이 실린다는 희망을 확인케 했다. 지도자와 권력자에 대한 국민들의 바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고, 그 앎은 실천으로 이어졌다.

때문에 그의 죽음은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충격이었고, 그가 죽기 하루 전 여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됐다는 사실은 더 큰 충격이었다.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야당은 그의 충격적 죽음이 여비서의 성추행 고소에 따른 것이라고 단정 지은 지 오래다.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러지는 박 시장의 5일장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60여만 명이 동참했다. 여성단체 중심의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박 시장에 대한 추모는 2차 가해가 되고 있다’는 반대 여론 역시 확산되고 있다.

국민들에게 그의 죽음은 친구를 잃은 듯 슬프지만 온전히 슬퍼할 수도 없다는 슬픔이 더 크다.

온전히 추모할 수 없는 죽음은 백선엽 장군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는 보수나 진보를 떠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전쟁 영웅임에는 분명하다. 한국전쟁 시 한반도의 한쪽 귀퉁이만 남은 상태에서 낙동강 벨트를 지켜냈고, 국군의 자존심을 걸고 유엔군에 앞서 평양에 입성했던 용맹스런 장군이다.

그의 삶에서 국군의 시간만 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도 이런 전쟁 영웅이 있었다’고 자랑스러워 할 위인이다. 똘랑대는 정치군인의 삶과도 멀었을 뿐만 아니라 겸손하고 도량이 넓은 군인의 표상으로 삼아도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해방된 조국의 국군에 앞서 조국을 침탈한 일본군 편에 섰다. 더구나 독립군 토벌을 주목적으로 하는 간도특설대 장교였다. 그는 간도특설대 장교로 일제의 앞잡이가 된 경력을 인정은 했지만 사죄하지는 않았다. 대신 ‘어쩔 수 없었다’고 시대를 탓했다.

일본군이자 국군이었던 그가 죽어 대전 현충원에 묻혔다.

미래통합당과 일부 보수층에서는 서울현충원에 안장하지 않고 대전 현충원에 묻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나아가 “6·25전쟁 영웅을 국민장조차 치르지 못한게 통탄스럽다”는게 이들의 불만이다.

하지만 진보든 보수든 자기들 필요한 부분만 강조하고 감추고 싶은 곳은 일정 언급조차 않고 있어 말만 더 사나워지고 있다.

이를테면 진보층이나 민주당에서는 박 시장의 여비서 성추행에 대해서는 사자에 대한 ‘예의’를 따지며 침묵하고, 보수층과 통합당에서는 백 장군의 친일행위에 대해서 입도 방긋하지 않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하지만 박 시장이건, 백 장군이건 하고픈 말이 참으로 많겠다. 그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박 시장은 “염치없지만 내 삶에 혹시 작은 공이라도 있다면 그 공으로 내 잘못을 상쇄해 줄 수는 없겠소? 공과 과를 등가 하기에는 공이 부족하니 내 장례를 서울특별시장이 아니라 가족장으로 치뤘으면 마음이 더 편했을 듯하오”라고 하지 않았을까.

백 장군 역시 “공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민족을 등 돌리고 일제의 앞잡이가 되었던 과오를 어찌 덮을 수 있겠소. 나를 현충원에 묻지 말고 전우들이 기다리고 있는 낙동강 어디쯤에 묻어 나의 과오를 용서해준다면 훨훨 날아 가벼이 떠날 수 있겠소”라고 했을 성싶다.

죽은 자는 ‘삶을 두려워하라’며 그들의 삶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대신 말하고 있다. 진보건 보수건 간에 정치권은 죽은 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삶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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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2020-07-28 08:36:31
백선엽 장군, 박원순 시장님 모두가 많은 일을 하시고 우리사회에 족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사람의 긴 인생의 어느 한부분을 떼어내서 잘못이라 할 수 있겠지만 용서할 부분이 있고 시대상황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 보이기도 합니다. 태어나보니 크리스찬의 집안이고 깨어나보니 사찰의 동자승인 경우도 있으니 인생을 평가하기는 참 여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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