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식 칼럼] 도시의 묘화(妙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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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 칼럼] 도시의 묘화(妙火)
  • 김연식 논설실장
  • 승인 2020.07.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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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 논설실장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장마가 지나간 도시의 하늘은 더 맑고 높게 보인다. 봄날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잿빛 하늘도 사라져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자연환경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도시의 척박한 그늘에서 느낄 수 없는 일상을 맑은 하늘을 통해 한번쯤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1995년 서울시가 미세먼지 측정을 시작한 이래 25년이 지나면서 서울의 하늘은 맑은 날이 점차 많아졌다. 통계에 의하면 1년 365일 중 대기질 수준이 맑은 날로 표현되는 것이 210여일이라고 한다. 나머지 155여일은 눈비가 오거나 미세먼지로 맑은 하늘을 볼 수 없는 날이다.

이 같은 수치는 제주도와 비슷하다는 게 서울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서울 남산에서 직선거리로 20여km 떨어진 의정부 수락산이나 하남의 검단산 등을 볼 수 있는 날도 200여일로 20여 년 전보다 60일 이상 늘었다. 장마철 우기나 미세먼지가 많은 날을 제외하면 생각보다 많은 날들이 맑은 것이다.

고개를 돌려 건물 주위에 있는 하늘을 한번 살펴보자. 깨끗한 하늘도 많지만 우리나라 도시의 곳곳에는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지저분하다 못해 보기 흉할 정도다. 요즘은 전깃줄뿐만 아니라 각종 통신선들이 도시의 하늘을 뒤덮고 있어 미관을 크게 해치고 있다. 전국의 도심이 전봇대와 전깃줄로 엉켜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어느 도시를 가도 일률적이고 획일화 된 인도블록과 도심 골목골목의 하늘을 가로막고 있는 전선은 낙후된 도시의 단면이다. 도시의 상징이었던 전봇대와 전깃줄이 이제는 도시의 흉물이 된 것이다.

최근에는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도시재생 등 전선지중화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전으로부터 사업비 일부를 지원받아 펼치고 있는 지중화사업은 예산 부족으로 찔끔찔끔 진행되고 있다. 그것도 자치단체장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정책을 집행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전선지중화 업무를 선도적으로 추진하려는 공무원은 얼마나 될까? 도시의 아름다움과 쾌적함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추진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시의 변화는 공무원의 손과 머리에서 시작된다.

여기에 자치단체장의 철학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평범한 생각은 새로운 변화를 가져 오지 못한다.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환경은 시대적인 요구다. 축제와 관광개발을 통해 보여주기 위한 정책보다 도시민들의 삶이 편안한 보행환경과 도시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자치단체장의 철학이 왜 중요한가는 그의 철학에 따라 도시의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전기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79년 1월26일이다. 당시 경복궁 후원에 있는 건청궁에서 백열등 2개가 켜지면서 우리나라 전깃불의 역사가 시작됐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는 경복궁 안에 있는 연못에서 끌어올린 물로 만들었다. 발전기 용량은 16촉 백열등 750개를 켤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한다. 발전기를 설치하고 전등을 가설했던 회사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계 회사인 에디슨전등사였다.

1883년 미국에 보방사(답례로 방문한 사절단)로 파견됐던 민영익과 홍영식 등이 귀국해서 발전소 설치를 건의했고, 고종이 이를 받아 들여 전등설치 작업을 한 것이다.

전깃불을 처음 봤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촛불로 밤을 밝히던 세계에서 벗어나 밤에도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전등은 조선 사람들에게 당연히 신기한 존재였다. 사람들은 전등을 밤에도 불을 밝히는 묘한 불이라며 묘화(妙火)라고 불렀다. 묘화가 도시의 밤을 밝히기 시작해 지금까지 140년 동안 우리의 밤 문화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전깃불이 우리나라 산촌까지 보급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나의 고향은 전깃불이 1978년 처음 켜졌다. 우리나라에 전깃불이 처음 켜진 지 꼭 100년 만의 일이다. 전봇대 하나 없던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논과 밭 산 등 곳곳에 전봇대가 들어섰다. 전봇대는 도시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작은 시골 마을에도 전봇대가 들어서면서 도시화가 시작된 것이다.

요즘에는 친환경 에너지 개발의 일환으로 시골에 풍력단지와 태양광단지 등이 속속 들어서면서 2차선 지방도로 양면에 전봇대가 빽빽하게 들어서고 있다. 도심지에는 전봇대를 없애고 전선을 걷어내는 작업이 한창인데, 시골에는 전봇대와 전선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참 보기 싫은 모습이다. 돈이 좀 들더라도 전선 지중화를 통해 전봇대와 전선이 하늘을 가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전봇대와 전선이 있고 없고는 도시의 이미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전선 지중화사업으로 깨끗하고 말끔하게 단장된 도시, 전선을 비롯한 각종 선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도시의 모습은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묘화(妙火)가 대한민국에 들어와 불을 밝힌 지 한 세기를 넘었다. 시대에 맞는 묘화의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관련법 제정이 뒤따라야 한다. 그것은 도로 한 면에 전기 통신시설을 매설할 수 있는 관로개설을 의무화 하는 것이다. 관로규격은 도로의 넓이에 따라 정하면 된다. 누가 먼저 법안을 만들 것인가. 그는 분명 대한민국의 새로운 등불이 될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김연식 논설실장
ys_kim@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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