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화의 e글e글] 절반의 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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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의 e글e글] 절반의 중국사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0.08.1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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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절반의 중국사'는 근래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수작이다. (가오홍레이 저 | 메디치미디어)
이 책은 중국의 고전을 비롯해 방대한 사료들을 토대로 소수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데 그 의의를 두었다. 저자는 "소수민족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중국 내 '정통' 역사학자들과 힘을 겨루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며 지금의 중국 땅에 존재하는, 그러나 그동안 조명 받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두께가 1043쪽에 달하는 이 책 "말갈" 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청나라 말기 영국 암스트롱 조선소가 새로 건조한 배가 있었다. 시속 23해리인 이 4000톤급 순양함은 당시로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투함이었다. 영국은 원래 이 배를 청나라의 이홍장에게 팔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홍장의 주머니가 텅텅 비는 바람에 결국 일본이 사가고 말았다. 이홍장의 주머니가 비었을 뿐 중국에는 돈이 있었다. 그런데 1888년 서태후는 해군 군비로 책정된 500만 냥의 백은(白銀)을 청의원 중건에 쓰고 말았다.

청의원은 의화단의 난 때 영불연합군에 의해 불타버린 정원이었다. 서태후는 이 청의원을 고친 뒤 이름도 ‘이화원’으로 바꾸고 자신의 60번째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 토목공사에 다시 3000만 냥을 쏟아부었다. 이 역시 해군의 군비 확장을 위해 마련한 돈이었다. 청의 호부(戶部)도 맞장구를 쳤다. “황태후의 만수무강을 위해 해군에서 군함을 도입하는 일을 2년 동안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반면 일본은 메이지(明治) 천황이 앞장서서 30만 엔을 모금했다. 천황 스스로 씀씀이를 줄였고 해군이 전투함을 건조하는 것을 적극 지원하라고 궁내성(宮內省)에 명했다.

문무백관에게는 월급의 10분의 1을 내놓아 해군 발전기금으로 쓰도록 했다. 그 결과 영국 암스트롱 조선소가 만든 순양함이 일본 차지가 됐다. 1894년 중국에서 ‘갑오해전(甲午海戰)’이라 불리는 청일전쟁이 벌어졌을 때 청나라 북양함대를 박살 낸 일본의 기함(旗艦) 요시노호(吉野號)가 그 순양함이다. 한쪽은 무기를 갈고 말을 먹이며 적을 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마치 잘 벼른 한 자루의 날카로운 칼과 같았다. 다른 한쪽은 교만하고 건방진 데다 감각마저 흐려져 구멍이 마구 뚫린 품질 낮은 방패 같았으니 이 전쟁의 승패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고 책의 저자 가오훙레이는 쓰고 있다.

전쟁이 시작됐지만 서태후 이하 관리들은 경극(京劇)을 구경하느라 넋을 놓고 있었다. 전쟁에서 진 뒤 청은 일본에 가혹한 대가를 치렀다. 대만과 펑후도(澎湖島)를 내주고 배상금만 2억3000만 냥의 백은이었다. 일본인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얻은 배상금은 청 조정의 3년치 재정수입과 맞먹었다.

그것은 일본의 연간 국내 총생산의 네 배에 달하는 수치였으며 청이 보유한 북양함정 일곱 척을 살 수 있는 액수였다. 청의 배상금을 일본 엔화로 바꾸면 3억6450만 엔이었다. 일본은 갑오해전의 군비 2억47만 엔을 충당하고도 무려 1억6403만엔을 전쟁 한번으로 벌어들인 셈이 됐다. 일본은 전비를 제외한 이익금의 절반을 다시 군비 확충에 썼다. 일본은 단숨에 아시아 제일의 군사강국이 됐다. 또한 7260만 엔을 태환(兌換) 준비금으로 삼아 은본위에서 금본위로 화폐개혁을 완성해 세계 경제체제에 진입했다. 바야흐로 일본은 아시아 제일의 경제강국이 됐다.

중국인이 공부를 해서 무슨 소용이 있냐고 말하던 시절에 일본은 배상금 가운데 1000만 엔을 교육기금으로 조성해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일본처럼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실시한 것은 백 년이 흐른 뒤였다. 더구나 일본은 1200만 엔을 대만 통치비용으로 썼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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