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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44] 김종인의 사죄, 평가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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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44] 김종인의 사죄, 평가받아야 한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08.26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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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어쩌면 그의 이번 사죄가 정책과 행동의 뒷따름 없는 빈말에 그칠 경우 그의 무릎 꿇은 사죄는 또 다른 사기로 기억될 테고 보수 야당의 집권은 일장춘몽의 허망이 될 뿐이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주 광주 5·18 국립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었다. 무릎 꿇은 그는 “5·18 민주 영령과 광주시민 앞에 부디 이렇게 용서를 구한다”고 사죄했다.

1980년, 광주학살의 가해자 측 후예정당에 속한 정치지도자가 5·18 영령들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처음이다. 전두환의 민정당에서 시작해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미래통합당으로 정당의 이름은 계절 바뀌듯 바뀌었으나 잘못을 뉘우치는 데는 무려 40년이 걸렸다.

통독 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전쟁피해자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나치의 전쟁범죄에 사과한 것이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27년 만이었다. 이민족도 아닌 같은 국민을 학살하고 반성하는 시간이 2차 세계대전의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보다 길었으니 참으로 멀고 먼 길이다.

그는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너무 늦게 찾아왔다. 벌써 백 번이라도 사과하고 반성했어야 마땅한데, 이제야 그 첫걸음을 떼었다. 5·18 민주묘역에 잠들어 있는 원혼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사죄하는 그의 눈에 눈물이 비췄고, 일어서는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그는 이날 발표한 사과문에서 “역사의 화해는 가해자의 통렬한 반성과 고백을 통해 가장 이상적으로 완성될 수 있지만, 권력자의 진심 어린 성찰을 마냥 기대할 수 없는 형편에서 그 시대를 대표해 제가 이렇게 무릎을 꿇는다”고 했다. 내란을 일으키고 5·18 학살의 수괴인 전두환이 사과하지 않으니, 그 맥을 이어온 현재 보수 야당의 당수인 자신이 대신 사과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또 “(전두환의)신군부가 집권하고 만든 국보위에 저는 재무분과 위원으로 참여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상심에 빠진 광주시민, 군사정권에 반대했던 국민들에게는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개인적 이력에 대해서도 참회하듯 머리를 숙였다.

일부에서는 그의 사죄를 순수하지 못한 정략적 행보로 해석하며 폄하하기도 하지만 꼭 그렇게 볼일만은 아니다. 설혹 정치인의 보여주기 위한 정략적 행보라 할지라도 그런 행보는 하지 않음보다야 백번 천번 평가받아 마땅하다.

앞서 비유했던 빌리 그란트의 행보에 대해 어떤 정략적 행위라며 비난할 수 없듯이, 또는 기대할 수 없지만, 일본의 아베 총리가 일제의 만행에 대해 사죄한다면 그 행위의 순수성을 들먹이기 전에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듯이 김종인 위원장의 사죄는 미래통합당의 외연 확장을 위한 차원이라 하더라도 5·18 광주항쟁에 한 획을 그은 진일보한 행보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내 편, 네 편으로 나눠 싸움판의 조폭을 닮은 우리의 정치현실에서 그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은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전신의 정당들에서 줄곧 애용해온 ‘호남 포기, 영남 결집’의 수법이 공식적으로 폐기처분 됐다는 점이다. 자의가 아닌 시대정신에 의해 효용 가치가 다 된 탓도 있겠지만 이를 공식화한 것으로 나름의 가치는 갖고 있다.

다음은 김 위원장의 이번 행보가 5·18에 대한 미래통합당의 전향적인 정책으로 이어질 경우 호남에서도 정치가 경쟁의 장으로 나올 수 있다는 기대다. 물론 영남의 경우에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는 가정이다. 호남이건 영남이건 일당 독식의 정치는 비극이다. 그 비극의 종언을 그의 사죄가 대신했으면 한다.

결국 그의 이번 5·18 묘역 참배와 무릎 꿇은 사죄는 5·18의 명예회복뿐만 아니라 저급한 우리네 정치현실을 한 단계 끌어 올릴 수 있는 바람직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낙관적으로 평가하기에는 한참 이르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은 첩첩산중이고 갈 길은 멀다. 아직도 미래통합당에서는 5·18이나 호남을 ‘일베’시각으로 바라보며 호남 차별의 부당 이득을 얻고자 하는 알량한 정치인이 부지기수 포진돼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더욱 그렇다.

집권을 하지 못하더라도 ‘내 뱃지만 안녕하면 된다’는 이들이 극우세력과 한 목소리를 내는 한 김 위원장의 이번 무릎 꿇는 사죄는 무릎만 아프게 할 뿐이다. 어쩌면 그의 이번 사죄가 정책과 행동의 뒷따름 없는 빈말에 그칠 경우 그의 무릎 꿇은 사죄는 또 다른 사기로 기억될 테고 보수 야당의 집권은 일장춘몽의 허망이 될 뿐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무릎 꿇은 5·18 묘역 참배와 ‘국민통합특위’가 보수 야당의 꿈을 실현하는 도구이자 새로운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기대의 마음으로 김 위원장이 그날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했던 말을 그에게 다시 돌려주고 싶다. “국민은 현명하다. 괜히 쓸데없는 짓 하면 항상 손해 보게 돼 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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