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화의 e글e글] 라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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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의 e글e글] 라면 이야기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0.08.3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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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라면의 시초는 중국 라미엔(拉麵), 중일전쟁 당시 전투식량을 개발하기 위해 면을 튀겨서 장기보존하게 만든 뒤 뜨거운 국물과 같이 먹는 방법을 중국에서 먼저 개발. 중국군 포로의 베낭에서 라미엔을 일본군이 발견. 이를 일본이 2차대전 후 본격적으로 일본에서 개량하여 생산, 오늘날 대중음식이 된 라면이 탄생됐다.

한국에서 라면은 1963년 9월 15일 태어났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아 한국 사람들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던 1961년 어느 날 삼양식품(주) 전중윤 사장은 남대문시장을 지나다 배고픈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 죽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봤다.

전 사장은 "저 사람들에게 싸고 배부른 음식을 먹게 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전 사장은 일본에서 라면을 제조하는 기술을 들여오고자 한다. 하지만 외화가 없고 국교가 단절됐던 때라 라면을 제조하는 시설을 들여오기는 하늘에 별따기 였다. 정부가 가진 달러를 민간이 원화로 사던 시절, 한 라인에 6만 달러인 라면 제조 시설을 수입하기엔 전 사장도 돈이 부족했고 가난한 정부도 옹색하긴 마찬가지였다. 궁하면 통한다고 전 사장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종필(JP) 씨를 찾아 갔다.

“국민들 배 곯리지 말자”는 전 사장의 호소에 당시 세도를 가진 JP는 마침 농림부가 가지고 있던 10만 달러 중 5만 달러를 전 사장이 사도록 도와주었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우정은 이후 오랜 세월 이어진다.

라면 제조시설 수입을 하려고 전 사장이 일본으로 갔지만 일본의 반응은 냉담했다. 일본도 어렵던 시절, 라면 제조시설을 국교도 없는 한국에 선뜻 팔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여러 곳을 수소문하다 전 사장은 묘조(明星) 식품의 오쿠이(奧井) 사장을 만나 한국의 식량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와달라고 청한다. 다음 날 대답을 들으러 다시 찾은 전사장에게 오쿠이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많이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 가본 일이 없고 아직 국교 정상화도 안 됐지만 한국전쟁이 일본 경제를 재건해 준 셈이다. 당신들은 불행했지만 우리는 한국전쟁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내가 민간 베이스로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시설도 싼 가격으로 제공하겠다“ 오쿠이 사장은 한 라인에 6만 달러라던 라면제조시설을 두 라인에 2만5000달러로 즉석에서 발주를 해줬다.

면과 수프의 배합에 관한 일화도 있다. 전 사장은 일본 현지에서 라면제작의 전 공정을 배우지만 일본인 기술자들은 끝내 면과 수프의 배합 비율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전 사장이 끝내 비율을 못 배우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오쿠이 사장은 비서실장을 시켜 공항에서 봉투 하나를 전 사장에게 전해줬다. 비행기에서 뜯어보라는 그 봉투 안에는 기술자들이 펄펄 뛰며 비밀로 했던 면과 수프의 배합비율이 적혀 있었다.

가난하고 굶주렸던 국민들의 배를 채워줬던 라면은 이렇게 눈물겨운 사연을 안고 1963년 9월 15일 삼양 ‘치킨라면’ 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당시 가격이 개당 10원, 식당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30원이고, 커피 한 잔이 35원이던 시절이니 저렴한 가격이었다. 나는 라면을 먹을 때마다 그 고마움을 새기곤 한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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