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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논단] ‘잘 짖는 개가 명견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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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논단] ‘잘 짖는 개가 명견은 아니다’
  • 김연식 논설실장
  • 승인 2020.09.0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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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 논설실장

‘쉰 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한 마리 개였다. 옆에 있는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면 나도 따라 같이 짖었다’  조선후기 관료이자 문인인 탁원 이근수선생의 말이다.

그는 쉰 살이 될 때까지 듣기 좋은 공자와 맹자의 말씀을 아무 생각 없이 읇었다고 한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한 것이었다. 그는 쉰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생각과 삶이 일치하는 독창적인 사상가로 거듭났다.

마치 우리나라의 현실 정치인들을 보는 듯하다. 자신의 정치적 철학보다 정파적 이익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지는 정치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야당일 때는 여당과 정부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여당이 되어서는 야당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 여야가 바뀌고 자리와 사람만 옮겨졌을 뿐인데 어떻게 태도가 저렇게까지 변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대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보면 지조 보다는 권력을 중심으로 패가 갈라지는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패거리 정치라고 할 수 있다.

건국이후 40여 년간은 독재와 군부가 정권을 잡아 사실상 야당다운 야당보다는 재야에 가까운 인사들이 정권을 견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의와 지조가 살아 있는 야인시대였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정착되면서 우리나라는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라는 정치인이 대표하는 3김시대를 맞이했다.

이른바 지역출신 당수에 따라 국회의원들이 줄을 서는 ‘보스정치’가 중심을 이루었다. ‘군정종식’에서 시작해 ‘문민정부’를 내세운 김영삼 정권과 ‘국민의 정부’를 내세운 김대중 정권에서는 보스정치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영남을 기반으로, 호남을 기반으로, 충청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나눠지면서 국회의원들도 출신지역에 따라 소속정당을 달리했다.

하지만 3김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정치권에서는 때 아닌 이념과 사상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참여정부를 내세운 노무현 정권에서는 시민운동가들이 다수 제도권에 진출하면서 파격적인 행보가 이어졌다. 말 그대로 국민들이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정치세계를 맛본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도 레임덕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야당에게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보수와 개발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린 이명박 전 대통령과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지낸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교적 안정을 중시하는 국정운영을 택했다. 당시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미국산소고기 수입반대 등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이며 정권을 압박했고 결국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공격을 받은 박근혜 정권은 물러나고 말았다.

이어 집권한 문재인대통령은 국민적 기대를 안고 출범했으나 진보와 보수의 충돌이 예상보다 강해지면서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1대국회 들어 국정감사가 처음 열릴 예정이다. 코로나 19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가 고통 받고 있다. 세계는 벌써 동서냉전이 무너지고 실리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 전쟁이 한창인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진영과 이념으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국정감사는 대정부 질문과 함께 의정활동의 꽃이라고 불린다. 임기 4년 동안 자신의 철학과 소신 비전 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많은 국회의원들이 철저한 준비를 한다. 국정감사는 제헌국회부터 시작했으나 1972년 국회가 해산되면서 한 때 중단이 됐다.

그러다가 1988년 제13대 국회에서 16년 만에 부활했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제도라 할 만큼 국정감사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특권이면서 막중한 임무이다. 감사는 국가기관과 광역단체 정부투자기관 한국은행 농협 등 정부 산하기관과 유관기관에 대한 업무 전반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제도가 정치공방으로 번지고 폭로와 비방으로 얼룩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국회의원 개인의 과욕으로 검증되지 않은 각종 의혹을 제기하거나 ‘내편 감싸기’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부실국감과 실물국감 논란이 반복되고 있으며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21대 국회는 이러한 오명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잘 짖는 개가 명견은 아니다. 옆집 개가 짖으면 따라 짖는 것은 개들의 몫이다.  사람도 말을 잘한다고 군자가 아니다. 정파와 소속정당에 따라 ‘니편 내편’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의를 위해 소신 있게 발언하는 의원의 모습이 중요하다. 국민은 여야를 떠나 바른 말을 하는 국회의원을 좋아한다. 본질에서 벗어나고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소속 정당의 입장에 따라 엉뚱한 궤변을 늘어놓는다면 떼로 짖는 개와 무엇이 다른가.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다. 대의 민주주의 원칙에 띠라 국민이 낸 세금이 잘 사용되고 있는지, 수 백조 원이나 되는 우리나라의 예산이 잘 사용되고 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여기에는 여야가 있어서는 안 된다. 여당은 피감기관을 감싸고 야당은 피감기관에 고성으로 윽박지르기를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피감기관인 국무위원과 기관장은 방어적인 자세보다 국회의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여당의원들을 등에 없고 교만하거나 불성실한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

21대 국회의원들의 평균 나이는 54.9세이다. 평균재산도 21억7619만원으로 나타났다. 평균 나이도 쉰을 넘었고 재산도 20억 원을 넘는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의 가치를 아는 위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옆집에서 소리 지른다고 함께 소리 지르지 말고 품위 있는 사상가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전국매일신문] 김연식 논설실장
ys_kim@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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