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상태바
[칼럼]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0.09.17 14: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재혁 지방부국장

역린(逆鱗)은 용의 목 아래에 ‘거꾸로(逆) 난 비늘(鱗)’을 뜻한다. 한비자가 “용을 길들인 사람일지라도 그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죽는데,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으므로 이를 건드리지 않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국가 지배권이 군주에게 있던 시절, 왕의 분노를 사 목숨을 잃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 민의에 반하는 비리와 불공정은 언제든지 역린이 돼 권력을 무너뜨린다.

만인에게 공평해야 할 병역과 교육, 취업 문제가 대표적인 ‘국민의 역린’이다. 현직 법무부 장관 아들의 ‘병역 특혜’ 의혹과 전임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 특혜’ 의혹,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의 ‘취업 불공정’에 2030세대가 분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병역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비늘’이다. 대통령 선거판까지 흔들었다. 유력 대권주자였던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풍 논란’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민심은 이미 떠난 뒤였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당시 “국정조사를 하자”며 맹폭을 퍼부었다.
 
그랬던 추 장관에 대해  “교육과 병역 문제야말로 국민의 역린이고, 공정과 정의 면에서 중요한 문제”라며 빠른 수사를 촉구할 정도가 됐다. 법무부가 영어로 ‘Ministry of Legal Affairs(법적 업무부)’가 아니라 ‘Ministry of Justice(정의부)’라는 사실을 장관이 모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입시·취업 관련 불공정성 또한 뜨거운 뇌관이다.
 
전 정권의 정유라 부정입학 사건이 무색할 정도로 현 정부 들어서도 입시 의혹과 인국공 사태 등이 계속 터지자 청년들이 분노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촛불집회를 열고 “정부가 그토록 내세웠던 공정과 정의는 어디에 있느냐”고 외쳤다. “토익시험 열 번을 보고 허벅지 찔러가면서 14시간씩 공부한 난 호구”라는 한탄도 나왔다.

전국시대 맹자는 유가학파의 분류상 사맹학파로 공자 문하의 적통을 대표하며, 철두철미하게 백성을 근본으로 생각했던 민본주의 사상가이다.전국7웅이 다투는 혼란의 와중에서도 꿋꿋하게 백성을 중심에 놓는 민본주의를 꿈꾸며 임금은 백성과 함께 즐겨야 한다며 민권(民權)을 더없이 높였고 민본사상을 최대로 고취시켰다.

당시 맹자는 이상 사회를 꿈꾼 것이 아니라 그 실현 가능성에도 털끝만큼 의심하지 않았다. 부국강병의 패도주의가 오히려 비현실적인 뜬구름이라며 군주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맹자 이후 2300여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그가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민본주의라는 이상사회는 실현된 적이 없다.

맹자의 민본주의는 말 그대로 ‘백성을 뿌리’라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맹자가 생각한 백성은 보이지는 않지만 땅 위에 서 있는 큰 나무를 지탱해 주는 뿌리와 같은 존재였다. 비록 정치적인 힘은 없지만 백성이 없으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나무의 뿌리가 조금이라도 상하면 나무 전체의 생명이 위태롭기에 백성 역시 하나라도 소외되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최고 법에 명시한 민주주의라는 우리사회를 맹자가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우리는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정치가는 국민의 머슴이나 심부름꾼이라고 부르짖는다. 맹자가 그토록 갈망하던 민주주의라는 이름만 듣고는 백성이 주인인 시대가 열렸다고 기뻐하다 그 내막을 들여다보고는 크게 실망하며 분명 적지 않게 의아해 할 것이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머슴이 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 부으며 머슴살이 시켜달라고 애원하며, 자기들보다 몇 배 더 잘 살도록 돈을 걷어서까지 머슴 월급을 줄 주인이 과연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러한 기이한 현상을 보고나면 맹자는 명(名)과 실(實)이 맞지 않으니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고거나 이름에 맞는 참된 민주주의를 시행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이 주인 노릇을 하는 경우는 선거 때마다 한 표를 던지는 일 밖에 없다.

제도의 한계나 권력추구자의 행태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가 의(義)가 아닌 이(利)에 눈이 멀어 표밭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국민들의 정치 선진의식이 깨어있어야 국민의 바람과는 동떨어진 의구심이 가는 검찰개혁추진과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는 조국이나 추미애 같은 관료를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맹자의 사상 속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실질에 부합시킬 길을 하나 찾을 수 있다. 바로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민이 진짜 주인이 되는 것이다. 국민이 권력추구자의 정치놀음에 놀아나지 않고, 모두가 깨어나서 냉철한 눈으로 권력자를 바라볼 때, 비로소 국민이 주인이 되고 권력자들의 술수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불가능하거나 요원한 일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智)의 능력, 시비지심을 가지고 있고, 상서지교(庠序之敎)를 펼 환경적 조건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단(四端)을 확충하면 온 세상을 지킬 수 있고, 확충하지 못하면 자기 부모도 섬기지 못한다.”는 맹자의 말이 뼈에 와 닿는다.

정치가 이 모양인 것은 사단을 확충하지 못한 우리에게 근본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민주주의 제도의 한계나 권력추구자의 행태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이 의(義)가 아닌 이(利)에 눈이 멀어 ‘표밭’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명실상부한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주인’인 국민뿐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