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詩 21] ‘기다림’과 ‘그리움’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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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21] ‘기다림’과 ‘그리움’의 계절이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09.2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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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 시인(1945년생)
경남 창원 출신으로 서울대 국문과 졸업,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함께 읽기> ‘그리움’과 ‘기다림’이란 낱말이 참 따스하게 느껴질 계절이 다가온다. 너무 추워도 너무 더워도 그리움이란 말은 좀 거리가 먼 듯한데, 조금 서늘한 이맘때가 잘 어울리지 않나 싶다.

어쩌면 잎이 떨어지기에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잎이 떨어지면 그리움조차 나에게서 멀어져 가지 않나 하는 조바심 때문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 날과 씨로 만나서 /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옛날 베를 짤 때 먼저 베틀에 세로로 긴 실을 걸친 다음 또 다른 실을 가로로 겹쳤다. 이때 세로의 실을 날줄, 가로의 실을 씨줄이라 했다.

이 날줄과 씨줄이 엮어지면서 비단 등의 옷감이 만들어진다. 혹 이런 표현을 써보거나 많이 들어보셨을 게다. ‘우리의 사랑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라는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슬픈 이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은 현재 슬픔을 안고 살거나, 이전에 슬픔을 이불 속에 감추었던 사람일 게다.

그리고 '그리움'이나 '사랑' 같은 말은 자성(磁性)을 띤다. 마치 자석처럼 한 사랑이 다른 사랑을 끌어당기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을 끌어당기니까.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여기서 이 시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가 ‘기다림’과 ‘그리움’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특히 첫 연과 끝 연에서 반복돼 나온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이라는 가정법에 주목 해본다. 이런 가정법은 시인의 바람(소망)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그 바람의 강도를 드높이는 소도구이니까.

스산한 바람이 불어올 때다. 잎이 떨어지고 씨앗도 떨어지는 계절. 거기서 한 줌 그리움의 씨앗을 줍는다. 씨앗이 있으면 새끼치기는 쉽다. 마치 민들레 홀씨가 온 누리에 퍼지듯이 말이다.

지금 그대에게 다가온 그 씨앗을 그냥 버리지 말고 살포시 안아주시면, 그럼 또 다른 그리움을 반드시 달고 올 거니까.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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