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율곡 이이의 러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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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율곡 이이의 러브스토리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0.10.1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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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조선 시대의 한 획을 그었던 명망 있거나 출중한 선비들의 뒤에는 애틋한 정을 쌓았거나 추문에 시달린 이도 있었고,지고지순한 사랑을 펼친 이들이 있었는데 이는 퇴계 이황과 두향에서 볼 수 있고 선비 유희경과 부안기생 매창, 최경창과 함경도기생 홍랑, 그리고 송도 삼절의 하나로 알려진 황진이와 서경덕의 스토리 그와 비슷하게 이율곡에게도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어린 나이에 율곡을 만났다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고 율곡을 연모하였던 해주기생 유지였다.

유지는 율곡이 세상을 떠나자 삼년상을 치루고 절에 가서 여승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율곡이 하룻밤 묶던 절에 가서 율곡과 몸은 하나가 되지 못하였지만 마음으로 하나 되었던 일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율곡이 관직에 나오기 전 청년 시절에 금강산의 어느 절에 들어가 지냈던 일이 있어서 이율곡이 유지에게 절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보기도 한다. 율곡은 절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관직에 나갈 때 마다 반대파들의 시빗거리가 되었고 성균관에서 문묘 배알 때도 중은 참석할 수 없다 하여 이율곡은 그 사나운 눈총들 때문에 그 자리에 가지도 못하였다고 한다.

이율곡은 불교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려 절에 간 것이 아니라 학문을 더하기 위하여 간 것이었다. 이율곡은 어떻든 금강산에 있는 한 절의 스님들과 선행을 하면서 2년간 절밥을 먹으며 지냈던 일이 있기에 이는 두고두고 말성이 된 것은 사실이다. 세월이 지나 이율곡의 학식과 덕망이 인정되어 그런 일들은 묻히게 되었지만 마지막에 유지가 여승으로 갔다하니 이율곡이 절에 머물렀다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율곡 이이가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하던 1574년 그의 임지인 해주 관아에 도착을 하였다. 황해도 관찰사가 된 것은 율곡이 병으로 안하여 몸이 약해져 관직을 제수하여도 사양하기를 여러 차례나 하였다. 조정은 그의 학식과 품성을 높게 사서 중요한 관직을 제수하여 맡기고자 하였지만 이율곡은 받아들이지 않아 생각을 한 것이 이율곡이 약해진 몸을 요양하려 황해도 해주에 있는 처가나 황주에 있는 누이집으로 자주 간다는 것을 알고 황해도 관찰사를 하며 요양도 하게 되어 이율곡은 이를 받아들이고 해주에 간 것이다. 해주 관아로 가서 선화당 별채에 머무는데 저녁이 되어 주안상이 한 관기에 의해 들려서 들어오고 이어 뒤에는 어린 기생 하나가 따라 오더란다.

그녀는 어린 기생인 유지였는데 나이가 12살에 불과하였다. 그때 율곡의 나이는 39세였으니 딸 정도도 안되는 어린 나이의 기생이 들어와 율곡을 모시고자 하였으나 유지를 보니 너무 어려 술시중은 하게 하였으나 화합은 하지 아니하고 돌아가라 일렀다. 유지에게 들어본 즉 부친은 선비였고 모친은 양가집 여인이었는데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기적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안타까이 여긴 율곡은 딸처럼 귀여워해 주었다고 한다. 관찰사 임기가 다되어 이율곡은 한양으로 돌아갔지만 어린 기생 유지는 율곡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가 없어서 언젠가는 다시 모시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기생에게는 어울리지 않겠지만 수절하다시피 지내며 율곡을 기다렸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9년이 지났을 때 이율곡은 명나라 사신 황홍헌을 맞이하는 원접사로 평양으로 가는 길에 해주 관아에 들려서 하룻밤을 지내는데 밤에 율곡의 침소로 기생 유지가 왔는데 그 사이 유지는 성숙해져서 나이는 21세로 만개한 꽃처럼 아름다웠다. 유지는 율곡을 못잊어 그 날 밤을 모시려 하였으나 이율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지는 또다시 그리운 님과 같이 마음에 품고 있는 이율곡을 못 잊어 또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해가 바뀌어 이율곡은 황주에 있는 누님 집을 가려다 해주에 들려 유지를 다시 만나 같이 술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나서 황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해주 근처 강마을에 이르러 한 절을 찾아 그날 밤 유하고자 머물고 있었는데 이를 알고 유지는 율곡이 있는 절의 침소까지 찾아왔다. 한데 이때는 이율곡은  몸이 많이 쇠약해져 약해진 몸을 이유로 유지의 청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 때 유지와 하룻밤을 보냈는데 둘의 사이에 병풍을 치고 밤을 새다시피 지내고 유지의 애끓는 마음이 혹여 상처가 될까봐 위로의 글로 시를 지어 유지에게 전하여 주었다고 하며 그 시는 '閉門兮傷仁(폐문혜상인)-문을 닫자 하니 인정을 상할 것이요, 同寢兮害義(동침혜해의)-같이 자자 하니 의리를 해칠 것이다, 撤去兮屛障(철거혜병장)-병풍도 치워놓고 같은 방에서, 異牀兮異被(이상혜이피)-다른 침상 다른 이불 덮고 누웠네'

사랑하는 기생 유지가 율곡을 찾아와 동침을 원할 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인간적인 고뇌를 표현한 그의 시구(詩句) 전해져 내려온다. 율곡은 정갈한 이성관을 가진 선비였다고 전해진다. 율곡은 곧으면서도 유하고 강하면서도 부드러웠으며 평상시 자기가 생각한 바를 솔선수범하며 주변 사람을 가르친 실천 학자와 정치가로 후세까지 그의 덕망은 전해져 내려온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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