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148] ‘SAMSUNG’ 이건희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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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48] ‘SAMSUNG’ 이건희를 생각하며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10.2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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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생전에 한 번도 대면한 적도 없는 한 사람의 죽음과 관련한 글을 쓰고자 함은 ‘이제 생각해보니 그가 나에게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유럽 여행길의 어느 공항 풍경이 떠올랐다. 독일이었던가, 영국이었던가 가늠하기도 힘들 만큼 오래전 일이다. 여행 차 유럽 어느 나라의 국제공항에 내렸을 때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대합실에서 나오니 공항의 모든 카트에 파란색의 ‘SAMSUNG’이라는 영문이 쓰여 있었다.

처음에는 반가웠고, 격한 반가움이 지나자 감정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으로 확장됐다. 무슨 대단한 제품도 아닌 작은 광고물에 국가와 국민까지 들먹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에서 우리나라의 이미지는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유명호텔의 가전제품 대부분이 삼성 아니면 LG 제품이고, 거리에서는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를 쉽게 볼 수 있는 지금과는 다른 시절 이야기다.

남북 분단의 상징물인 판문점이 나라의 이미지를 대신했고, 88서울 올림픽이 겨우 국가 이미지를 선양하던 시절이니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삼성과 나는 이국의 낯선 땅에서 그렇게 인연이 맺어졌고, 지금도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나 TV, 또는 반도체 등 세계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는 제품들보다 외국 국제공항 카트에 ‘SAMSUNG’라고 쓰인 광고가 더 인상 깊게 남아있다.

한 사람의 죽음과 관련된 기사를 쓴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필자의 개인적 가치관이 스며들 수밖에 없는 칼럼으로 사자에 대한 글을 쓴다는 일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명과 암이 교차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다 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한 번도 대면한 적도 없는 한 사람의 죽음과 관련한 글을 쓰고자 함은 ‘이제 생각해보니 그가 나에게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미래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

지난 1987년 12월 1일, 삼성의 2대 회장으로 취임한 고 이건희 회장이 취임사에서 했던 말이다.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누구나 실행할 수는 없는 일을 그는 취임사에서 밝혔던 대로 해 냈다.

그는 ‘TV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라거나 ‘미국, 일본보다 20~30년 뒤쳐졌는데 따라가기나 하겠는가’라는 주변의 한결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 세계 1위 반도체 대국을 만들었다. 공상 같은 꿈을 현실로 이뤄냈다.

반도체 성공에 이어 삼성은 애니콜 신화를 잇따라 창조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촌철살인의 유명한 말로 상징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신경영 선언’ 이후 그는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어 마침내 세계 시장을 재패했다.

세계 1위 TV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경쟁력도 고 이건희 회장의 도전 정신이 빚어낸 결과다. 2006년 세계 TV 시장에서 무려 35년 동안 ‘넘사벽’으로 군림하던 일본 소니를 제치고 삼성전자는 14년째 왕좌를 지켜오고 있다.

회장 취임 당시 10조 원이던 삼성의 매출은 2018년 387조 원으로 약 39배 늘어났고, 이익은 2,000억 원에서 72조 원으로 259배가 증가했다. 주식 시가총액 역시 1조 원에서 396조 원으로 396배 뛰었다.

그는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시킨 주역이고, 그로 인해 한국인도 덩달아 세계 속의 한국인이 되었다.

운이 좋아서, 또는 수완이 좋아서 쉽게 쉽게 이뤄진 일이겠는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시장에서 싸웠는가는 유명한 ‘애니콜 화형’에서 단적으로 보여 준다.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애니콜 등 삼성전자 제품 15만점이 불태워졌다. 애니콜 휴대폰 불량률이 11.8%까지 치솟자 그가 내린 극약 처방이다. ‘품질 경영’ 의지를 보여 주는 상징이었다. 1994년 국내 4위였던 삼성전자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이듬해 1위로 올라섰다. ‘애니콜 신화’의 시작이자 오늘날 스마트폰 세계 1위는 그렇게 시작됐다.

정경유착과 비자금 조성, 경영권 불법 승계, 빈곤한 나눔의 철학 등 눈부신 성취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가 없지 않지만 그는 어찌 됐건 대한민국이 낳은 위대한 경영인이었으며, 선각자였다.

그가 남기고 간 세상의 정치판은 국민의 이름을 앞세운 채 여전히 집단의 이해가 충돌하면서 그저 소란스럽다 못해 저질스럽다. 언론마저 싸움판에 뛰어들어 검찰총장 편과 법무장관 편으로 국민을 나누고 있다.

그는 생전에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했다. 조문 온 인사들을 보며 그는 뭐라고 할까. 혹시 “3, 4류 인간들이 오셨구나”라며 고개를 돌리지나 않을 런지.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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