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詩 24] 남편의 운명은 아내에게(?)
상태바
[함께 읽는 詩 24] 남편의 운명은 아내에게(?)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11.18 11: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수권 시인(1940~2016)
전남 고흥 출신으로 1975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2005년까지 순천대 문창과 교수로 근무하다 퇴임한 뒤 2016년 별세.

<함께 읽기> 아내는 백혈병 환자인데 교통사고로 인한 과다출혈로 병원으로 이송, 수술실로 들어가는 뒤를 시인이 따르고 있다.

스트레처카에 누운 아내를 안쓰럽게 보다가 문득 거미줄처럼 갈라진 아내의 발바닥을 본다. 여자의 발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이 쩍쩍 갈라진 그 발바닥, 그 순간 남편의 눈에는 발바닥 대신 갑골문자가 떠오른다.

갑골문자는 거북의 등껍질에 새겨진 글자인데 그 모양이 울퉁불퉁하다. 역사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그 문자가 아내의 발처럼 보일 때 시인은 전혀 다른 느낌을 갖는다. 그 갑골문자는 자기를 위해 희생한 흔적이요, 상처이기 때문에. 생사를 다투는 수술실로 건너가는 아내의 맨발, 아내는 백혈병으로 투병 중 교통사고로 서울 큰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피가 모자라 위험지경에 놓인다.

AB형을 구하기 위해 어쩔 줄 모르던 중 소식을 들은 근처 의경 부대원들이 헌혈해 줘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필자 또한 20여년 전 백혈병으로 골수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 S병원에 1년여 동안 입원, B형의 피를 가진 서울 인근 전경부대원 20명으로 부터 6개월여 동안 혈소판 수혈을 위해 날마다 부대와 병원을 오가며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지금껏 글답지 않는 글이라도 쓰게해준 아내가 오버랩된다.

시인은 서울 경찰청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저의 아내 연잎새 같은 이 여자는, 똥장군을 져서 저를 시인 만들고 교수를 만들어 준 여인입니다. 수박구덩이에 똥장군을 지고 날라서 저는 수박밭을 지키고, 아내는 여름 해수욕장이 있는 30리 길을 걸어서, 그 수박을 이고 날라 그걸 팔아 저를 시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가 했더니 보험회사 28년을 빌붙어 일하며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국립대 교수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박사학위는 커녕 석사학위도 없이 전문대만 나온 저를 오로지 시만 쓰게 하여 교수 만들고 자기는 쓰러졌습니다. 첫 월급을 받아놓고 "시 쓰면 돈이 나와요, 밥이 나와요라고 평생 타박했더니 시도 밥 먹여 줄 때가 있군요!"라며 펑펑 울었습니다.(중략)

아내는 자기의 공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로, 모든 공을 주님께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몹쓸 '짐승의 피'를 타고난 저는 아내가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압니다.

청장님께 말씀드리지만 저의 아내가 죽으면 저는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습니다. 시란 피 한 방울보다 값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