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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트럼프 통치의 끝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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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트럼프 통치의 끝을 보면서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0.11.1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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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 공화 양당 후보 모두는 역사상 최고의 득표수를 기록했다. 트럼프 후보는 국민적 지지와 민심을 보살피지 않았기에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고, 정책과 비전으로 표심에 어필하기보다는 지난 4년간 반복했던 순열 지지층의 결집만을 무기로 삼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억지 주장으로 아직 시시비비를 가리고는 있지만, 최종적으로 바이든 후보가 약 500만표(7%) 정도의 표차로 승리할 것으로 예상한다.미국의 모든 주(州)는 인구의 많고 적음을 떠나 똑같이 2명씩의 상원의원을 가진다. 독자적인 개별 주들이 합쳐진 ‘연방정부’라는 건국의 가치를 100명의 상원의원 숫자에 담은 것이다.

하원의원의 경우 정확히 인구규모에 따라 분포되어 있어서 캘리포니아 53명, 알래스카 1명, 이런 방식으로 435명을 만들었다. 수도 워싱턴DC에도 주민이 있으니 상하원 의원은 없지만 3명을 할당, 이렇게 합쳐진 숫자가 538명이라는 선거인단이 되었다. 불합리해 보이지만, 538이라는 숫자에는 미국의 ‘정신’과 국민의 정확한 ‘등가성’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버틸까 하는 문제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두 가지 옵션을 사용하고 있는데, 하나는 제도적 수단을 휘두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더기 소송전(訴訟戰)을 치르는 것이다.먼저 후자의 경우 일부 초기 판결에서 보듯이 문제가 되는 몇몇 주에서 트럼프의 손을 들어 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 사안에 대해서 연방대법원이 관여할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매우 낮다. 문제는 전자의 경우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조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선거 결과를 뒤집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마침내 저물게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4년은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준 시간이었다.미국은 우리를 비롯한 전 세계 많은 국가에 늘 특별한 존재였다. 세계 제1 경제 대국이고 군사 강국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 시스템의 모범 국가였고 그 가치의 수호자였다.

특히 우리가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미국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땅으로 선망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미국 대통령 트럼프를 지켜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그 나라의 민주주의와 대통령제를 다시 보게 되었다.트럼프 재임 4년은 우리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져 주고 있다. 우리 대통령은 국민을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지 않고 ‘모두의’ 지도자로서 통합의 중심에 서 있을까. 우리 정치 시스템에서는 권력분립과 상호 견제라고 하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우리 정치는 증오와 배제라는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타협과 화합의 정치를 이뤄내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대뜸 손꼽히는 역대 대통령은 세 사람이다. 15대 제임스 뷰캐넌, 17대 앤드루 존슨, 29대 워런 하딩이 그들이다. 뷰캐넌은 연방분열을 막지 못하고 남북전쟁이 일어나게 만들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노예제도를 둘러싼 남북간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던 거다.존슨은 남북전쟁 후 지나친 남부 유화책으로 북부의 급진 공화파들로부터 미움받아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결과는 무죄). 그럼에도 알래스카를 헐값에 사들인 업적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 해서 최악이란 평가는 잘못이란 견해도 없지 않다.하딩은 그의 이름을 딴 워런 하딩의 오류라는 용어의 주인공이다.

우리도 많이 듣던 소리지만, 외모만 보고 사람을 선택하는 잘못이 워런 하딩의 오류다. 경제위기 앞에서 아무 조치를 못 취하고 있다가 공황을 초래했다는 평가다. 무능의 대명사가 곧 워런 하딩인 것이다.트럼프도 ‘최악 대통령’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워싱턴 포스터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가 지난 4월 코로나 대응을 제대로 못한 걸 비판한 글에서 미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란 호칭을 가차없이 안겨준 것. 트럼프는 지금 패배한 대선 결과에 딴죽을 걸고 있는 중이다.

선거 불복에다 느닷없이 국방장관을 경질하는 따위 ‘무자비한 레임덕’도 연출한다. 하여 최악의 패배자란 소리도 듣기 시작했다. ‘최악’ 2관왕에 등극할 판이다. 이형기 시인은 가야할 때를 분명히 아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답냐고 노래했다. 트럼프의 뒷모습은 그렇지 못하다.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마주했던 미국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이 아니었다. 극단적 사회분열을 가까스로 피하고 미국은 다시 통합의 길로 나설 수 있을까. 온 세계인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되돌아보면 우리는 이미 이런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2016년 촛불 집회 당시 거리로 뛰쳐나갔던 많은 국민이 원했던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언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민주화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권력이 집중되고 상호 견제 시스템이 무너진 ‘가장 제왕적인’ 대통령제하에서 살고 있다. 트럼프의 4년은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대통령 한 명이 주주의를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시간이었다. 트럼프 통치의 끝을 보면서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평가해 볼 때가 되었다.

우리 민주주의의 위기는 지금처럼 대통령 1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통치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배제와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타협과 조정의 정치가 가능하도록 새로운 통치 구조에 대한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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