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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구하라 법' 하루빨리 처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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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구하라 법' 하루빨리 처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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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2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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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어린자녀를 내팽개치고 집을 나갔던 부모나 친족들이 자녀의 유산을 챙기기 위해 다시 나타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 부양의무 해태개념이 모호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이 이어지는 등 여론이 들끓지만 국회는 손을 놓고 있다.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들에겐 유산을 챙기지 못하도록 하는 상속제 개선을 하루 빨리 제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가수 구하라 씨의 사망 후 친모와 유족 간 상속 분쟁을 계기로 살뜰한 이웃사촌 보다 못한 사이가 돼 “나 몰라”라고 지내든 부모가 어느 날 나타나 유산을 받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슷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 여론이 들끓지만, 막상 국회에서는 관련 입법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구하라 법’으로 불리는 민법일부 개정안은 부모나 자식 등에 대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 할 경우, 친족이라도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했다.

현행법에도 상속결격 사유가 규정돼 있긴 하지만, 직계존속 등을 고의로 살해하거나 피상속인의 유언을 방해하는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의 상속제도 아래에서는 가출·이혼 등으로 피상속인인 자녀와 유대 관계가 없는 부모가 재산을 상속받는 일이 종종 발생해 논란이 이어져 왔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아들이 전사하자 연락을 끊었던 친모가 군인사망 보상금의 절반을 받아 가거나,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딸에게 지급된 사망 보험금을 10여년전 어머니와 이혼한 친부가 별도 협의 없이 절반을 수령한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6월에도 전북에서 순직이 인정된 소방관의 친모가 30년 만에 나타나 딸의 유족연금과 퇴직금을 수령하려 한 사실이 알려져 ‘전북판 구하라’ 사건이라 불리며 공분이 일었던 적도 있다.

최근 서울에서도 젊은 딸이 암으로 숨지자 생모가 28년 만에 나타나 억대 보험금과 유산을 받아 가고, 고인을 돌본 계모와 이복 동생을 상대로 소송까지 낸 사실이 알려졌다.

이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오래전 사귀던 남자 친구를 버리고 간 아가씨가 이 젊은 친구가 미스터 트롯에서 상위순위에 올라 빛은 발하자 다시 사귀자고 찾아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사회 변화에 따른 상속권 제도 정비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부양 의무의 현저한 해태’라는 개념이 모호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법조계의 지적이 있 다.

올해 6월 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재발의한 민법 1004조 개정안에 대한 법사위 검토보고서를 보면 ‘법적 불안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학계·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해 개정안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돼있다.

보고서는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또 그 의무를 ‘현저히 게을리 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등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부모의 상속 결격 사유가 사후에 확인될 경우 상속재산을 취득한 제3자가 피해를 볼 수 있고, 피상속인이 부모를 용서했는데도 부모 이외의 다른 친족에게 상속이 이뤄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2017년 헌법재판소 역시 “가족생활 형태나 경제적 여건 등에 따라 부양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이나 정도가 다양하다”며 “이를 상속결격 사유로 본다면 법적 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유사한 피해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는 만큼 하루빨리 ‘구하라 법’을 통과시켜 법적 공백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구하라씨 오빠의 법률대리인인 변호사는 “가족으로서의 권리가 존재하려면 기본적 의무역시 다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 구성원의 인식”이라며 “모호한 판단기준은 해외 사례처럼 개별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을 통해 구체화해 나가면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본과 스위스, 중국 등 해외의 경우 상속권 박탈 사유에 ‘부양 의무를 현저히 게을리 한 경우’를 포함하고 있다.

아무리 법적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해도 자녀양육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사망으로 인한 재산은 다 가져가는 것은 정의와 상식에 반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키우지 않겠다”고 친권을 포기해놓고, 입장을 바꿔 재산만 챙기는 씁쓸한 사회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생모가 피 덩어리를 낳은 직후부터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자녀의 사망소식을 듣고는 나타나 보험금과 퇴직금 등을 챙겨서야 이게 인륜인가라고 한탄할만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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