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화의 e글e글] 기록의 정신 조선왕조실록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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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의 e글e글] 기록의 정신 조선왕조실록 ③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0.12.0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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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든다.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아보자.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다. 태종 실록이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전하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다. 몇 년이 지났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희 정승이 나섰다. ‘전하,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전하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하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 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다.

이 말을 세종이 들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다.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볼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볼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볼까?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다. 누구 보라고 썼는가?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는가.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놓았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 비서실이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이다.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다. 그런데 ‘승정원 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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