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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토사구팽(兎死狗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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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토사구팽(兎死狗烹)’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0.12.1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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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지난해 7월8일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는 “정치적 사건과 선거사건에 있어서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법과 원칙에 충실한 자세로 엄정하게 처리하겠다”면서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정치논리에 따르거나 타협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 총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을 통해 “기본적 헌법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굳건히 하고, 공정한 경쟁질서와 신뢰의 기반을 확립하는 데 형사법 집행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검찰의 주인이자 의뢰인인 국민에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법이 적용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을 드리겠다”고 했다.

윤 총장의 소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 배제와 징계 청구를 결정했다.

그결과 조미연 판사는 결정문에서 맹종(盲從,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남이 시키는 대로 덮어놓고 따름), 몰각(沒却, 없애고 무시해 버림)과 전횡(專橫, 권세를 혼자 쥐고 제 마음대로 함)이란 말을 써 추미애의 윤석열 직무정지는 물론 징계 시도 자체가 현행 법적 견지에서는 어처구니없는 것이라는 꾸지람을 무섭게 적었다. 그녀보다 판사를 먼저 한, ‘법도 모르고 법 위에서 행동하려 하는’ 소위 법무부장관이라는 추미애의 낯을 파랗게 질리게 했을 준열(峻烈)한 선고였다.

“검사는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에 복종함이 당연하지만,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게 맹종할 경우 검사들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유지될 수 없다….직무 정지가 지속되면 임기만료 시까지 직무에서 배제돼 사실상 해임과 같은 결과에 이르는데, 이는 검찰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총장 임기를 정한 관련 법령의 취지를 몰각(沒却)하는 것이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고, 그 임명 과정에서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통해 검증이 이뤄지는 것을 고려하면 (직무 배제 조치가)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 대한 인사권으로까지 전횡되지 않도록 그 필요성이 더욱 엄격하게 숙고돼야 한다”

추미애 장관은 이 선고를 받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난데없는 전 대통령 노무현을 소환하며(그녀는 노무현 탄핵안에 찬성했었다) “검찰은 수사와 기소의 잣대를 고무줄처럼 임의로 자의적으로 쓰면서 어떤 민주적 통제도 거부하고 있다. 이 백척간두에서 살 떨리는 무서움과 공포를 느낀다. 그렇기에 저의 소임을 접을 수가 없다”고 썼다. 후배 여판사의 냉정한 결정에서 받은 좌절과 수치를 딛고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검찰을 향해 예의 저주를 퍼부으며 이미 흘러간 노래가 된 ‘검찰개혁’ 타령을 또 부른 것이다.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 먹고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린다는 '토사구팽'이라는 고사성어를 반추하지 못했다. 적폐 청산 명문으로 휘둘러댔던 칼날이 결국 자신과 측근들을 향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구천(句踐)으로 하여금 월나라의 패권을 장악하도록 도운 범려(范<8821>)는 뒤늦게 구천이 의심스러워 탈출하여 제나라에 은거했다. 그는 함께 일했던 문종(文種)에게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狡<5154>死走狗烹’라는 글을 보내어 피신토록 충고했다. 그러나 문종은 주저하다가 반역자로 몰린 끝에 자결하고 만다. 사기(史記)의 월왕구천세가에 나오는 이야기다.

‘검찰개혁’이라는 용어가 아전인수를 넘어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선동 구호로 악용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단칼에 잘라내려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전격작전은 일단 실패로 돌아간 양상이다. 4일 열겠다던 징계위원회는 10일로 연기됐다. 법무차관이 징계위 개최에 반대해 돌연 사표를 내자, 청와대는 즉각 후임을 임명해 스스로 온갖 사달의 배후임을 증명했다.윤 총장의 직무배제 시점과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조작 혐의 공무원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과정이 얽히면서, 추미애 장관의 무리한 행태 이유가 유추되고 있다.

정권의 ‘검찰개혁’ 구호가 ‘검찰 장악’이나 ‘검찰 무력화’의 다른 말이었음도 속속 입증되는 중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숨겨둔 흑심도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이 시점에 진정한 ‘검찰개혁’의 의미를 새로 곱씹어보게 된다. 검찰의 엄정한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무리한 수사로 애먼 국민을 잡는 일을 더는 못 하도록 과도한 권한을 분산하는 게 검찰개혁의 핵심가치다. 아무도 그런 개혁에 불만이 없다. 공수처도 정치적 중립성을 전혀 의심받지 않는 기구 운영이 핵심요건이다.

윤 총장 찍어내기도 잘 안 되고,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사건 수사도 막지 못하자 민주당에서는 “그러니까 공수처가 필요하다”는 어불성설의 쩨쩨한 궤변들을 쏟아낸다. 직역하면 “검찰은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게 드러났으니, 검찰 때려잡는 무소불위의 우리 편 핵무기 공수처가 시급하다”는, 속이 훤히 보이는 얍삽한 말 아닌가. 윤석열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문재인 정권이 무참히 휘두른 ‘적폐청산’의 칼잡이였다.

이 정권은 정치보복의 칼맛 피 맛에 취하여 진정한‘제도개혁’을 실기(失期)하고 말았다. 그들은 명검(名劍)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앉히면서 이 땅에 반대할 수 있는 자유의 씨를 말리고자 했을 것 같다는 끔찍한 짐작마저 든다. 돌이켜보니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하라”던 문 대통령의 말은 그냥 멋있게 보이려고 해본 췌사(贅辭)에 불과했음이 자명하다.

그들은, 사냥이 모두 끝났으므로 이제 ‘사냥개를 삶을’ 시간이라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그 사냥개가 한사코 몸부림을 치고 있다. 오죽 답답하면, 많은 국민이 그 사냥개에게서라도 희망을 찾자고 목을 빼어 기다리고 있을까. 참으로 딱한 세상이고 야릇한 나라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기어이 사냥개를 삶고 ‘공수처’를 만들어 휘두르면 상황이 끝이 날까.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고작 그 수준일까. 백성이 어리석게 보일지 모르지만, 성난 민심의 바다는 권력의 배를 뒤엎을 수 있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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