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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상(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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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상(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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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23 16: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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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우리 동네 이장님이 농업인의 날 상을 받았다. 식량 작물분야에서 고품질 친환경 농산물 생산에 주력, 경쟁력 제고와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했기 때문이란다. 당사자의 그간의 노고가 한 장의 표창장에 함축되어 있어 표창장만 읽어보고도 당사자의 희생과 노력을 알 수 있었다.

또 새말 상근이 형님 댁에는 반공연맹, 평통자문회, 선거관리위원회, 청소년선도위원회, 해병 2사단 등 그야말로 대한민국 행정부와 사법부의 예하 기관에서 수여한 감사패와 표창장들이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나는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고 머리보다는 꼬리 쪽에 붙어서 피동적으로 움직이다보니 타의 모범이 되는 일은 아예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표창장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예비군의 날 행사에 모범 예비군 표창장을 수여하는데 내가 선정되었단다. 기상이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일상이변도 생긴다는 것도 알았다. 상 받기 전부터 상 받을 일을 곰곰이 생각해 봐도, 한 톨도 생각 안 나서 결국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시상식에 참석 못했다. 저녁에 예비군 중대본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표창장을 대신 받아놓고 중대장님이 기다리고 있단다.

할 수 없이 그날 저녁 상장을 받으러가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고 취한 채로 집에 왔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표창장은 술집에 두고 대신에 술집 메뉴판이었다. 상품으로 받은 시계는 술김에 떨어트려 초침 분침 다 떨어져 나가 온도계를 방불케 하는 시계였다. 시계의 유리 깨지지 않은 것이 그저 다행스러울 뿐이었다. 술값으로 당시 쌀 세 가마 값을 지불했다.

이 일을 생각하니 전에 경기 문학 공로상 받을 때 일이 문득 떠올랐다. ‘문학’자가 들어가는 상은 글을 잘 써야 받는 상으로 알았는데, 문협에 가입하고 허드렛일 하느라 아예 펜을 놓다시피 했는데, ‘문학’자가 들어가는 상을 받는다는 것이 가당치가 않았다. 양심에 가책보다도 뭔가 잘못된 것만 같아 연락해준 당사자에게 물어보니, 받을 만해서 받는 것이니 아무 소리 말고 가서 받기만 하라고 해서 경기 문인협회를 찾아갔다. 수상을 마치고 귀가 중에 버스에서 졸다가 그만 선반 위에 올려둔 상장을 잊고 내렸다. 그 상장을 한번 만졌다가 놓은 것으로 만족했다. 아마 하나님께서 전혀 자격이 없는 놈이 상 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 것 같았다.

상 받으러 가느라고 한나절 동안 집을 비웠으니 그 공백을 아내가 눈치 못 챌 리가 없다. 아내에게 상(賞)소리 한번 해봐라 표창장 대신 술집 메뉴판을 들고 온 값으로 쌀 세 가마를 날렸던 전과가 있던 지라, 아내의 눈꼬리가 올라갈 것은 불문가여서 적당히 얼버무렸다.

나같이 상을 받는데 자격미달인 사람들에게 상을 주기 위함인지 행운상이라는 것이 있다. 행운상도 상이라 그 상이라도 받아다가 아내에게 들이밀고파서 찜질방 개업하는데, 모델하우스 오픈 하는 곳 등을 두루 찾아다니며, 주소와 전화번호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적어 보았지만, 행운상은 인파의 머리 끝 저편에서 미소만 짓고 있었다. 행운상이야말로 일반 표창장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인파에 떠밀려 발등을 밟혀가며 몸소 깨달았다.

초등학교 동창들이 가을을 맞아 강원도로 야유회를 가는데, 그 시간에 단위농협 한마음 축제가 중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그날의 행사 중 행운상 추첨이 있었다. 내가 행운상에 추첨이 되었는데 암만 내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더란다. 그때 나는 관광버스 안에서 소란한 음악에 묻혀 몸을 비틀며 ‘돌리고, 돌리고’를 했으니, 그 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다.

후에 들어보니 그때 내가 받아야 할 행운상품이 대형 LCD텔레비전이었단다. 나를 찾아온 행운을 피해 강원도로 도망을 간 짝이 난 것이다. 그 후로 아내는 잘 보이는 거실의 텔레비전은 놔두고 안방에 들어가 금이 죽죽 가는 LG도 아닌, 그 훨씬 전의 상표인 골드스타 표시가 붙은 텔레비전을 보며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금기해야 할 말이 하나가 더 생긴 것이다. 상(賞)소리만 해도 아내는 눈꼬리를 치켜 올린다. 상복 없는 나에게 조석으로 이 상(賞) 대신 이 밥상(床)을 수여한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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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 2021-01-24 10:56:51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문학상은 꼭 타셔도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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