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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의 e글e글] 은혜에 대한 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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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의 e글e글] 은혜에 대한 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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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0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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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조선 중종때 반석평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19세기에 발간된 족보 '만가보'에 따르면, 그는 충북 음성에서 반서린의 서자로 태어났다. 13세에 아버지를 여읜 후 노비가 되어 서울의 이 참판 집에서 종으로 지내게 됐다. 본래 똑똑했던 그는 너무나 공부하고 싶어 비슷한 또래였던 이 참판의 아들 이오성이 방에서 글을 배우면 밖에서 몰래 듣고 익히고 외웠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 참판은 반석평을 기특하게 여겨 그의 노비문서를 불태워 없앤 후 아들이 없는 친척 양반집에 양자로 가게 해줬다. 1507년 반석평은 식년문과(3년에 한 번씩 열리는 과거) 병과에 급제했다. 이후 예문관검열(예문관에서 사초를 기록하던 정9품 벼슬)이 됐고, 1516년에는 문신 안당의 추천으로 경흥부사가 됐고, 다시 함경남도 병마절도사가 됐다. 그리고 병조참의,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충청도 관찰사 등을 지내다가, 1531년에는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예조참판,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관찰사, 형조참판, 한성부 판윤 등을 거친 후, 형조판서(정2품, 지금의 법무부 장관)가 됏다.

그가 형조판서로 있을 때였다. 한 번은 초거(종2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타던 수레)를 타고 가는데, 옛 주인이었던 이 참판의 아들 이오성이 거지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됐다. 반석평은 그 자리에서 초거를 세우게 한 후 이오성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하며 자신이 예전에 그 집의 종이었던 석평이라고 이야기했다. 

형조판서가 길바닥에, 그것도 거지 앞에서, 무릎을 꿇은 사실이 알려지자, 반석평은 왕에게 자신의 원래 신분을 밝힌 후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자기 대신 이오성을 벼슬길에 나갈 수 있도록 청하였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왕은 반석평의 행동을 용서하고 이오성에게 사옹원 별제라는 벼슬을 내려 줬다. 

물론 반석평의 출세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이 참판이 자원하여 반석평의 노비문서를 불태워 양인이 되게 해줬고, 반석평은 스스로 노력해서 정식으로 문과에 급제했기 때문이다. 그가 했던 잘못이라면 예전에 자신의 처지를 보살펴 준 이 참판의 은혜를 잊지 못해 그의 아들 앞에 엎드려 감사의 예를 표한 것뿐이었다.

받은 도움이나 은혜를 쉽게 저버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반석평처럼 받은 은혜를 평생 잊지 않고, 갚고자 애쓰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당신에게 가장 큰 도움을 베푼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 은혜에 당신은 얼마나 보답하며 살아왔습니까?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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