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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55] 코로나19가 보여준 종교의 슬픈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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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55] 코로나19가 보여준 종교의 슬픈 민낯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1.02.03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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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종교의 자유가 조직의 유지나 확장을 위한 배타적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종교의 자유는 부정될 수밖에 없고, 종교는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부가가치가 목적이 되는 이익집단에 불과하게 된다.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는 성경 구절이 적힌 종교시설의 건물 외벽에 달걀이 던져졌다.

신종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안정세를 찾아가던 중에 광주시 광산구에 소재한 TCS 국제학교에서 지난달 말 한꺼번에 1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한데 따른 한 시민의 분노였다.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그의 분노에 시민들은 대리만족의 정서적 공감으로 정당성을 부여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종교, 그중에서도 개신교가 처한 현실을 웅변적으로 대변한 현상이자 종교의 민낯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 대유행의 중심에는 늘 종교시설이 있었다.

대구 신천지교회에서 시작된 코로나19의 1차 대유행은 사랑제일교회의 광복절 집회와 대면 예배 강행으로 2차 유행으로 이어졌고, 최근 경북 상주 BTJ 열방센터에 이어 IM선교회에서 다시 3차 유행으로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가 겨우 안정세에 접어들 때마다 반복되는 확진자 증폭은 개신교계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또 교회냐’라는 질문을 낳고 있다.

‘또 교회냐’는 질문은 교회의 위기가 아니라 교회의 부정에 가깝다.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종교를 걱정해야 한다면 ‘종교는 왜 필요한가’ 하는 물음이다.

코로나19로 이웃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가게를 문 닫아야 하고, 직장을 잃고, 그리운 사람마저 만나지 못하는 끔찍한 고통의 시대다. 모든 국민이 이러한 고통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 자가격리도 마다않고 견뎌내고 있는 인내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개신교계 일부 교회에서는 대면 예배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정부의 방역대책과 행정명령에 대해 여전히 ‘종교의 자유’로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많은 교회가 정부의 방역대책을 지키며 비대면 예배를 실행하고 있지만 상당수의 교회는 당국의 행정명령을 무시하거나 음모론으로 대응하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19에 확진된 신도들이 동선을 속이거나 검사를 거부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어 국민들의 지탄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교회가 있어야 할 곳은 자신들만의 조직수호나 전파가 아니라 아픔을 겪는 이웃이어야 한다. 함께 하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고통의 가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가장 우선된 가르침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이 말씀이 근본 가치다.

종교의 자유는 공동체적 가치 속에 존재할 때 보호되는 자유다. 종교의 자유가 조직의 유지나 확장을 위한 배타적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종교의 자유는 부정될 수밖에 없고, 종교는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부가가치가 목적이 되는 이익집단에 불과하게 된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예배편의를 빙자하여 장사하는 사람들의 돈을 쏟고 상을 엎은 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고, 권력을 쟁취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였다.

2000년 전, 성전을 장사의 수단으로 이용한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분노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교회에도 경종으로 삼아야 할 가르침이자 교훈이다. 

일부 교회의 일탈이나 해당 종교집단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코로나19로 국민들이 신음하고 있을 때 종교는 어디에 있었는가 살펴볼 일이다. 아픔을 극복하고 치유에 동참하기보다는, 외면하고 오히려 훼방꾼처럼 행세했다는 비난을 종교계는 아프게 새겨야 한다.

이웃의 아픔을 묻는 물음에 “내가 이웃을 지키는 사람입니까?”라며 카인의 대답을 하고 있지나 않는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교단이 앞장서서 정부의 방역수칙과 행정명령을 준수하는데서 더 나아가 이웃의 아픔과 함께하고 위로하는 낮은 자세가 필요하다.

코로나19의 확산 변곡점마다 교회가 원인이 되면서 주변에 교인임을 숨기고 싶은 ‘샤이 기독교인’이 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나도 기독교인이지만...’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요즘의 일부 교회를 보면 하나님도 울게 할 것 같아 두렵다”라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지인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그들의 잘못이 아님을 알기에, 그들의 아픔에 대한 깊이를 가늠할 수 있기에 일부 교회의 행태가 더 안타까운 요즘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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