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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 칼럼] 필론의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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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 칼럼] 필론의 돼지
  • 김연식 논설실장
  • 승인 2021.02.1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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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 논설실장

설 연휴가 지나면서 2021년도가 완전하게 막을 올렸다. 매년 양력 1월 1일이면 새해가 시작되지만 음력 1월 1일이 남아 있기에 새해로 생각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음력설이 지나면 곧 봄이 찾아오고 한 해를 시작하는 본격적인 기지개가 켜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농경문화가 오랫동안 뿌리내린 우리나라의 농촌은 설과 함께 곧 입춘이 찾아오면 본격적인 농사준비를 한다. 1년 내내 작동하는 제조업과는 달리 농촌의 봄은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신호이기에 항상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묵은 때를 씻어 버리고 한해를 시작하는 마음처럼 각오도 새롭게 다져진다.

공직사회도 새해가 시작됐다. 동절기를 보낸 공직사회는 새해 예산이 확정되고 새로운 사업규모가 정해지면서 본격적인 사업시행에 나서게 된다. 지난 연말 각 지방의회를 통과한 자치단체의 예산은 1월부터 집행할 수 있지만 사실상 봄이 와야 제대로 집행된다. 각종 설계와 준비기간을 거치면 해빙이 시작되는 3월부터 발주가 시작된다. 정부는 예산의 조기 집행을 통해 지역경기 회생을 주문하고 있다. 매년 자치단체별로 조기집행 실적을 체크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조기집행은 자금을 빨리 풀어 지역경기 활성화를 도모하는 좋은 취지이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가 자칫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사업으로 부실시공이 나타날 수 있기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조기집행은 공무원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달라진다. 소규모 사업의 경우 동절기 설계를 마치면 3월부터 각종 공사를 발주할 수 있다. 하지만 사업시행에 따른 민원과 설계기간 부족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면 일부 사업은 연말이 되어도 착공조차 못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담당공무원들의 업무행태에 따라 지역경기 활성화가 판가름 날 정도로 조기집행은 중요한 대목이다.

코로나19로 2020년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집행은 상당부분 명시 이월되거나 귀속됐다. 올해 역시 이월된 사업비가 책정돼 있지만 역시 코로나19로 집행여부는 불투명한 상태이다. 내년 6월 1일이면 전국 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전국의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은 올해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밀착행정과 밀착의정을 펼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주민 친화적인 사업을 적극 시행하고 각종 민원도 적극 해결할 것으로 보인다. 선출직 공직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주민들의 세금으로 인건비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절반을 넘고 있다. 군 단위는 물론 일부 시 단위 자치단체에서도 지방세로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종 세외수입과 국도비 등 외부에 의존하는 예산이 많다. 잘 알다시피 국도비 지원은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지방의원의 능력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선출직 공무원들이 지나치게 지역에 상주하다보면 국도비 지원은 멀어질 수 있다.

정부부처와 도청에 얼마나 많이 다니느냐에 따라 국도비 규모가 결정된다는 말이 있듯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년 예산 철에 반짝 방문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1월부터 12월까지 평소 각 부처를 방문해 사업의 타당성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예산을 받을 수 있다. 그것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공무원 등은 올해도 역시 코로나 정국이 계속되는 만큼 안주할 것이 아니라 내면을 살찌우는 역할을 하기 바란다.

필론의 돼지라는 말이 있다. 유럽 철학자인 필론이 배를 타고 여행을 하는 도중 갑자가 폭풍우를 만났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폭풍우를 만나자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고 배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있고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는 사람도 있는 등 각자 살기 위해 마지막 방법을 동원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필론은 명색이 철학자였기 때문에 배에서 통곡하는 사람과 같이 행동할 수는 없었다. 조용히 생각하던 필론은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기로 하고 배 밑에 있는 창고로 내려갔다. 창고 안에는 돼지 한 마리가 사람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필론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 판단하며 돼지와 같이 잠을 자기로 했다. 한참이 지나 잠에서 깨어난 필론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어느새 폭풍우는 잠잠해 졌고 하늘은 맑아졌다.

소설가 이문열씨도 그의 소설 ‘필론의 돼지’에서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현역과 제대군인의 싸움을 묘사했다. 강자와 약자의 싸움에는 반드시 중간자가 있기 마련이다. 철학자 필론도 사람들을 피해 조용한 곳에서 평정심을 찾았으며, 이문열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도 싸움에 말려들지 않고 중간자 입장에서 과정을 지켜볼 뿐이었다.

코로나19로 정치 경제 사회가 조용하다고 자치단체 공무원마저 상황을 지켜보는 필론의 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더 단단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국도비 확보에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지역경기는 물론 경쟁력 있는 자치단체의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의 분발과 응원을 주문해 본다.

[전국매일신문] 김연식 논설실장
ys_kim@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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