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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의 e글e글] 서울의 어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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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의 e글e글] 서울의 어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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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1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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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조선 건국초의 일이다. 송도(松都) 수창궁에서 등극한 이성계는 조정 대신들과 천도를 결정하고 무학대사에게 도읍지를 찾아 달라고 청했다. 무학대사는 옛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알려진 계룡산으로 내려가 산세와 지세를 살폈으나 아무래도 도읍지로는 적당치 않아 발길을 북으로 돌려 한양에 도착한 스님은 봉은사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뚝섬 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니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방으로 지세를 자세히 살핀 스님은 그곳이 바로 새 도읍지라고 생각했다.

"음, 땅이 넓고 강이 흐르니 과연 새 왕조가 뜻을 펼칠 만한 길상지로군..." 무학대사는 흐뭇한 마음으로 잠시 쉬고 있었다. 이때였다.

"이놈의 소는 미련하기가 꼭 무학 같구나. 왜 바른 길로 가지 않고 굳이 굽은 길로 들어서느냐?" 순간 무학대사의 귀가 번쩍 뜨였다. 고개를 들고 돌아보니 길 저쪽으로 소를 몰고 가는 한 노인이 채찍으로 소를 때리며 꾸짖고 있었다. 스님은 얼른 노인 앞으로 달려갔다.

"노인장, 지금 소더러 뭐라고 하셨는지요?" "미련하기가 꼭 무학 같다고 했소" "그건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요?" "아마 무학이 새 도읍지를 찾아다니는 모양인데 좋은 곳을 다 놔두고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니 어찌 미련하고 한심한 일이 아니겠소"

무학대사는 노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님은 공손히 합장하고 절을 올리며 말했다. "제가 바로 그 미련한 무학이올시다. 제 소견으로는 이곳이 좋은 도읍지라고 보았는데 노인장께서 일깨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좋은 도읍지가 있으면 이 나라 천년 대계를 위해 알려 주기기 바랍니다"

노인은 채찍을 들어 서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 10리를 더 들어가서 주변 지형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시오"

"노인장, 참으로 감사합니다" 무학이 정중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순간,  노인과 소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스님은 가벼운 걸음으로 서북쪽을 향해 10리쯤 걸었다. 그때 스님이 당도한 곳이 바로 지금의 경복궁 근처였다.

"과연 명당이구나" 삼각산, 인왕산, 남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땅을 보는 순간 무학대사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만면에 웃음을 띤 스님은 그 길로 태조 이성계를 만나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하여 도성을 쌓고 궁궐을 짓기로 했다.

"스님, 성은 어디쯤을 경계로 하면 좋겠습니까?" 이성계는 속히 대역사를 시작하고 싶었다.

"북쪽으로는 삼각산 중바위 밖으로 도성을 축조하십시오. 삼각산 중바위(인수봉)는 노승이 5백 나한에게 예배하는 형국이므로 성을 바위 밖으로 쌓으면 나라가 평안하고 흥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학대사의 뜻과는 달리 정도전 일파는 이를 반대하고 인수봉 안으로 성을 쌓아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했다. 이성계는 입장이 난처해졌다. 자신이 존경하는 스님의 뜻을 따르고 싶었으나 일등 개국공신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학대사와 대신들의 도성 축성에 관한 논쟁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무학대사는 인수봉 안으로 성을 쌓으면 중바위가 성안을 내려다보는 형국이므로 불교가 결코 흥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도전 일파 역시 인수봉 안으로 성을 쌓아야 유교가 흥할 수 있다는 지론 이었으므로 무학대사 의견에 팽팽히 맞섰던 것이다.

입장이 난처해진 이성계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 결정하기로 했다. 날을 잡아 제사를 지낸 이튿날이었다. 밤새 내린 눈이 봄볕에 다 녹아 내리는데 축성의 시비가 일고 있는 인수봉 인근에 마치 선을 그어 놓은 듯 눈이 녹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정도전 등 대신들은 이 사실을 이성계에게 즉시 고하고 이는 하늘의 뜻이므로 도성을 인수봉 안으로 쌓아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거참 신기한 일이로구나. 그 선대로 성을 쌓도록 하시오"

이 소식을 들은 무학대사는 홀로 탄식했다.
"억불의 기운이 감도니 이제 불교도 그 기운이 다해 가는구나"

성이 완성되자 눈이 울타리를 만들었다 하여 눈설(눈)자와 빙 둘러싼다는 울타리(圍)의 '울'자를 써서 '설울'이란 말이 생겼고 점차 발음이 변하여 '서울'로 불리워졌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노인이 무학대사에게 10리를 더 들어가라고 일러준 곳은 '왕(往)'자와 '십리(十里)'를 써서 '왕십리'라고 불렀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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