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박해광의 세상보기] 고(故)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며
상태바
[박해광의 세상보기] 고(故)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며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2.23 1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해광 경기민주넷 회장/ 前 경기 광주시의회 부의장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이렇게 시작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사가 백기완 선생께서 지난 2월15일 영면(永眠)하셨다.

일제치하였던 1932년에 출생하시어 돌아가실 때까지 89년의 인생은 한마디로 파란만장(波瀾萬丈)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 시기마다 투쟁의 삶을 살다 가셨다. 내가 백기완 선생을 직접 뵌 것은 몇 번의 강연장에서가 고작이어서 내게 떠오르는 백기완 선생 생전의 모습은 한결같은 두루마기 차림에 헝클어진 백발, 우렁찬 목소리와 목선에 도드라진 핏줄이 전부다.

그러나 그 분께서 작사한 노랫말처럼 노동자와 농민,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평생을 반독재 민주화, 민중해방 운동과 통일운동의 최전선에서 흔들림 없는 투쟁의 삶을 사셨던 분이기에 더욱 존경과 가슴 먹먹한 추모의 깊은 감정에 빠져든다.

백기완 선생은 나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 하지만 그 분의 공개된 투쟁이력을 통해 내 선친(先親, 박종진 초대 민선광주시장)과는 어느 정도 인연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백기완 선생과 비슷한 연배였던 내 선친도 “굴욕적인 1965년 한일협정에 반대하여 당시 일본에서 협상 후 김포공항으로 귀국하던 이동원 여당 의원에게 계란을 투척하며 구호를 외치고, 일본 측 사절단이 묵는 숙소였던 조선호텔을 찾아가 건물 앞에 내걸린 일장기를 깃봉을 타고 올라가 뜯어냈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 야당 의원이었던 강문봉의원이 갑자기 한일협정에 찬성발언을 하며 돌아선 것에 분개하여 장충동 강의원집 담벼락에 페인트로 ‘매국노’라는 글씨를 썼다”고 한다. 물론 일련의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내 선친도 연행과 구금을 당했다고 들었다.

또한 선친은 “민주회복국민회의(대표 천관우) 전국조직위원장을 맡아 ‘유신헌법반대 100만인 서명운동’, ‘명동 YWCA 위장결혼사건’ 등을 계획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고 했다. 아마도 역사 속 치열했던 투쟁의 현장에서 내 선친도 백기완 선생도 서로 지근거리의 위치에 서 계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면서 불현 듯 선친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두 분 모두 암울한 압제의 현실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투쟁의 삶을 살았다는 공통점 때문인 듯하다.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잘 알려진 마이클 센델(Michael J. Sandel) 미 하버드대 교수가 저술한 ‘공정하다는 착각-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 하는가-’라는 신간이 최근 베스트셀러가 되어 화제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능력주의로 굳어진 ‘성공과 실패에 대한 태도’가 계층 간 갈등과 불평등을 더욱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능력주의가 패자에겐 ‘전부 내 탓’이라는 좌절감을, 승자에겐 ‘내가 잘나서 성공했다’는 오만을 안겨주며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조장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적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승자의 ‘겸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승자의 능력에는 상대적으로 나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교육받고 성장할 수 있는 ‘행운’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능력주의가 결코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그의 주장은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고(故) 백기완 선생의 ‘노나메기’ 사상도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마이클 센델 교수와 결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 백기완 선생이 2019년 3월 발표한 소설 <버선발 이야기>(오마이북)에는 그의 '노나메기'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인공 ‘버선발(맨발)’이 역경 끝에 바다를 없애 거대한 땅을 만들고, 그 땅을 너나할 것 없이 모두에게 나눠주는 이야기다.

그는 이 책에 대하여 "여든 해가 넘도록 내 속에서 홀로 눈물짓던 이야기야. 버선발이 할머니를 만나는데, 할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죄악이 '내 것'이라고 말해. '내 것'이 자본주의를 싹틔우는 데 도움을 줬지만, 이걸 그대로 두면 사람이 '내 것'의 짐승이 돼. '내 것'은 거짓이야. 이 책에서 버선발을 통해 민중의 한바탕은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썩은 문명을 청산하고, 거짓을 깨고, 자유와 희망을 되찾아서 착한 벗나래(세상)를 만들자고 말한 거야"라고 소개했다. 그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래서 너도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노나메기' 세상을 만들어 자본주의의 문제, 양극화의 문제, 대결과 갈등의 시대를 넘어서는 해법을 ‘나눔’을 통해 제시했다.

나는 능력주의가 팽배한 현실 사회에서 마이클 센델 교수가 승자에게 요구하는 덕목인 ‘겸손’이나 고 백기완 선생이 그의 노나메기 사상인 ‘나눔’의 실천을 통해 자본주의의 폐해인 양극화 문제를 풀려고 한 것이 표현과 접근방법만 다를 뿐이지 결과적으로 같은 맥락의 해법이라고 이해한다.

영원한 재야(在野) 운동가이자 시대를 앞서 나간 혁명가 고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며 그 분이 말씀하신 ‘노나메기’ 세상이 이 땅위에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박해광 경기민주넷 회장/ 前 경기 광주시의회 부의장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