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양동익의 시선] 나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인류평화와 공영을 지향하는 외교통상②
상태바
[양동익의 시선] 나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인류평화와 공영을 지향하는 외교통상②
  •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 승인 2021.02.24 09: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이제 겨우 빈곤을 벗어난 위대한 중국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고대 중국인은 한족만을 말하고 있을까? 그리고 현대의 중국은 한족의 나라인가? 고대의 로마인이나 페르시안을 이탈리안이나 이란인으로 한정되어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의 미국 국민을 우리는 미국인이라 말한다. 이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실현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의 위대함은 인류정신문명의 흡입과 확장성에 있다.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서구문명은 그리스·로마문명이 모테가 되었고, 동양문명은 중국문명을 중심으로 발달하여 왔다.

한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라 이질적인 복합연합체이다. 그 중심 종족의 유래는 다양한 학설이 있으나 한족의 성립은 중국의 고대국가인 한나라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는 BC 202년에서 AD 220년까지 400년 동안 가장 오랫동안 중국대륙을 지배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한나라 사람이 한족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후 100여 년 동안 우리가 잘 아는 위·촉·오 삼국시대가 한나라의 고대 영토 내에서 한나라의 정체성이 계속해서 지속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전한 이전의 전국시대(BC 475~221)와 후한 이후 5호 16국 시대(316-439년), 5대10국(907~979), 금나라(남송시대 1127~1234), 원나라(1206~1368), 청나라(1635~1924) 등, 한나라 이후 2,000년의 중국 역사 중 절반을 이민족이 중국대륙을 지배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한족이 성립되었다. 지금의 만리장성 이남과 황하와 양쯔강을 기반으로 한 비옥한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한족이란 지역적·문화적 정체성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영토 확장의 계기는 당·원·명·청 시대를 거치는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의 첨예한 대립의 시대에 기인한다.

중국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있다. 한족의 국가를 만들 것이냐? 아니면 다민족을 포용하는 국가를 만들 것이냐? 의 선택이다. 전자를 선택한다면 한족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영토만을 중심으로 국가운영이 이루어져야 하고 후자를 선택한다는 것은 중국은 스스로 변해야 한다.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유구한 중국문화를 단절시켰다. 최근 중국은 이를 다시 복원하려 애를 쓰고 있으나 이것이 국수주의나 애국주의를 수단으로 하는 부자연스러움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중국의 문명은 타민족이 중국을 오랫동안 지배하였음에도 그들이 오히려 중국화되어 질 만큼 깊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은 중국의 역사를 왜곡할 필요도 없을 만큼 자부심으로 가득한 문화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지중해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던 것처럼 동양의 모든 문화는 중국으로 통하고 있었다. 그것은 문화의 힘이었고 백성의 힘이었다. 그리고 문화는 계획된 정책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 속의 자연스런 생존 속에 만들어 지는 것이다.

중국은 주변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여야 한다. 동북공정을 통한 한민족의 역사를 자국에 편입시키려는 문화침탈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것은 한민족의 뿌리를 단단히 박고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세계의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반도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주장과 또는 자국 내에 조선족이 국민으로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한민족의 역사가 자국의 역사라는 인식은 분명 잘못된 생각이다. 그러면 중국을 역사적으로 절반가까이 지배한 이민족의 역사가 과연 중국인의 역사인가 반문할 수밖에 없다.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은 독립적인 지위를 이어온 독특한 민족이다. 중국대륙으로부터 수도 없는 침략과 전쟁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자치적 권력을 잃은 적이 없었다. 고구려가 그러했고, 통일신라가 그러했다. 이후 중국대륙의 왕조는 한반도의 독립적 지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한반도와의 충돌은 왕조의 위협을 자초하게 했던 역사의 교훈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교훈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동북공정을 정당화하고 속국 운운하는 중국의 외교적 결례는 대국의 치졸한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의 세계패권 도전은 부당하다. 현재의 세계는 알렉산더가 동방을 원정하고 징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하던 땅따먹기 시대가 아니다. 징기스칸의 제국건설은 유목민의 약탈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서 출발하였고,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은 막강했던 페르시아와의 문화충돌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오래 전 역사 발전의 한 과정이었으며 그러한 역사의 교훈을 통해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세계패권도전은 명분도 없으며 목적도 없다. 현대인류는 다양성을 기본으로 하는 평화공존이 목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제 막 빈곤을 탈출하였다. 중국식 사회주의는 파시즘이나 나치즘과 같은 플로레타리아 독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체제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중국공산당 내부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민주적 협의체계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가 주변국을 위협하고 현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이 된다면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중국대륙은 다시 쪼개져 분리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위대한 중국은 스스로 존재하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 국민을 먼저 살려야 하고 스스로의 문화를 부흥시키는데 모든 전력을 다함이 옳다. 그리고 그들의 이상인 평등을 실현하는 국가가 먼저 되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중국이 세계 패권국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변하지 않는 중국은 우리에게는 심각한 위협이다. 동북공정을 정당화하고 우리를 속국이라 생각하고 국가 경제력을 남용하는 행위들은 우리에게 경계심으로 대륙을 바라보던 역사의 반복을 강요하게 할 뿐이다. 이제 한국은 작은 나라가 아니다. 국제사회를 연대시킬 수 있는 경제력과 문화적 힘을 가진 내실 있는 국가다. 또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충분한 국방기술과 방어력을 갖추고 있다. 두 나라는 이미 경제적으로 강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외교적인 신뢰를 하나씩 구축하여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중국은 먼저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결국 중국에게 있어 필연적으로 최고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중국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다. 중국대륙에 어떠한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그들은 세계패권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서 비롯된 파시즘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반증하고 있다. 이제 막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난 중국인의 시선을 외부로 돌린다는 것은 권력집단의 필연적인 수순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반복되는 역사적 한계성을 중국공산당 역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국방력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그들을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한·중·일 삼국은 세계패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오랜 역사를 공유하여 많은 공통분모를 함께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은 수많은 민족문화가 민족의 명멸과 함께 통합되며 현재에 이르렀다. 과거 역사의 약탈적 패권주의는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이 인류발전을 위한 올바른 방향이 되는 길이다.

[전국매일신문]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waterwrap@jeonmae.co.kr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