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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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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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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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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뚝배기보다 장맛이야” 친구가 이를 쑤시며 하는 소리였다. 식당이 초라하고 간판이 없어도 음식 맛으로 인해 사람이 들끓었다. 음식점은 간판이 없어도 잘되건만, 간판(학력)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무 곳에도 쓸데가 없었다. “학교 어디 나왔어?”라는 물음에는 할 말이 없었다. 학력이라는 간판은 청소년기와 장년기 때를 가리지 않고 순간순간 나에게 칼질을 해댔다. 극장 포스터 풀칠을 해서 붙이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간판(학력)은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이력서의 학력 기재 란은 나에게는 평생 괴로운 고민거리였다. 

범죄자가 법망을 피하여 어둠을 찾아다니듯이 이력서 제출 않는 곳을 찾아다니다보니, ‘주식회사’라는 곳은 아예 넘보지도 못했다. 도저히 취직다운 취직이 되지 않아서  군대에 지원을 해 사병으로 근무했다. 평생직장을 잡고자 하사관 지원을 했다. 결과는 간판(학력)미달로 상급부대에 진달도 안되고 내무반장 면접시험에서 탈락됐다.

제대 후 직장을 구하는데 이력서 제출하는 곳은 감히 넘볼 수도 없었다. 입사라고 할 것도 없이 들어간 공장은 직원이 나 혼자인 경우도 있었고, 봉급이라고는 기술 가르쳐준답시고 한 달에 두 번 영화구경하는 것이 전부인 장롱공장에도 다녀봤다. 또 새벽 다섯 시에 시작한 일이 저녁 아홉시나 돼야 끝나는 재생 타이어공장에 다녔는데 너무 힘들어 입술이 터져서 도저히 다닐 수가 없었다. 결국 막노동판까지 흘러들어갔는데 보름에 한 번 나오는 임금은 중간에서 가로채 가기 일쑤였다. 
 
나는 제대로 된 간판이 없는 탓으로 직장다운 직장에 다니지 못했다. 도저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미꾸라지 통발을 만들어서 밤이면 벌판으로 미꾸라지를 잡으러 다녔다. 매일 떡밥을 통발 속에 넣으며 일 나갈 준비를 하였다. 하루는 애를 낳고도 임신 중독으로 몸이 퉁퉁 부은 아내가 무엇을 먹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쓰레기 봉지 속에 집어넣었다. 쓰레기 봉지를 기웃하고 보니 아내가 버린 것은 점심때 조카들이 와서 발라먹고 버렸던 닭 뼈다귀였다. 얼른 핑 도는 눈물을 적시고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강화저수지 밑의 벌판으로 미꾸라지를 잡으러 갔다. 

미꾸라지가 많이 잡히면 아이의 뇌파검사 병원비에 아내에게 통닭 한 마리라도 사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늘은 비가 오는 탓인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미꾸라지도 많이 걸려들었다. 빗속이지만 이 정도라면 목표치를 초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억세게 운이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뒤 잴 겨를도 없이 그물을 걷고 오토바이 시동을 걸면서 집을 향해 곧장 달렸다. 도로 중앙 실선이 오른쪽으로 치우치기도 하고 왼쪽으로 치우치기도 하는 것을 보며 집에 당도하고 보니 불빛이 훤하다. 필시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며 뛰어드니 아내도 빗속의 남편이 걱정이 되어서 밤을 하얗게 새우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낮에 다니는 직장만 있어도 밤비에 젖은 내 자신이 처량하고, 잠을 못자서 부스스한 아내가 저토록 불쌍하지는 않을 것이다.

드디어 내가 그토록 갈구하던 제대로 된 직장을 잡게 되었다. 시청에 청원경찰 공채로 입사하게 된 것이다. 미관말직(微官末職)은커녕 책상도 없는 자리인 강변에서의 보초와 산위에 있는 배수지 관리하느라 대부분의 일을 제초작업으로 소일하는 것이지만, 얼마나 학수고대했던 직장이었던가. 오년 여를 다니다 IMF의 광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출근해서 받아든 행정봉투 속에는 예고도 없던 해고통지서가 들어있었다. 나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이 채 식기도 전에 목이 잘린 것이다. 

집에 가서 해고당한 이유라도 말해야겠는데 이유가 없다. 핑계 없는 무덤 봤냐고 아내는 말할 것이다. 억울하게 죽은(해고) 원혼이 길거리를 떠돌지 않고 가정이라는 곳으로 왕생극락하게끔 핑계거리라도 듣고자 시장(市長)면담을 부탁했는데 무산되었다. 노점상이 단속반에 쫓기듯이 어제까지 같이 근무하던 직원들에게 쫓겨 시청정문을 나왔다. 어쩌면 내가 당하는 수모도 간판이 없는 탓인지 모를 일이다. 간판이 없는 식당도 맛이 있다고 잘만 되는데, 간판(학력)없는 사람은 언제 한번 사람대접 받아보나 우리 사회에서 요원하기만 한 일이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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