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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봄날, 고향 길 위에서 만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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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봄날, 고향 길 위에서 만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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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1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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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햇살이 참 좋았던 지난 주말 고향인 김포를 찾아 학창시절에 다니던 시골길을 걸었다. 십리가 넘는 고향 길.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나는 12년 동안 이 길을 매일 힘든지도 모르고 걸었다. 절반은 논두렁길에 벌판이고, 나머지는 구불구불 낮은 산길에다 울퉁불퉁한 길이었다. 길 가운데는 질경이, 씀바귀 등 풀이 자라고 있었고 군대 군대 소똥이 있었다. 봄이 되면 겨울동안 얼어붙은 길이 녹아 늘 바지 가랑에 붉은 질흙이 묻었다. 신발이 자주 벗겨져 양말까지 버리기 일쑤였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늘 질퍼덕거리고, 겨울에는 얼어붙고 눈이 쌓여 있어 자전거가 있어도 무용지물이었다. 자전거 바퀴에 진흙이 끼면 너무 힘들어 차라리 걷는 것이 나았다.

고향에 대한 추억가운데는 부모님에 대한 것들이 많다. 당시는 전자시계가 없던 시절이라 시간을 잘 알 수 없었다. 머리맡에 온 집안 식구가 함께 듣는 전기 라디오가 있었는데 시간을 알려고 켜는 순간 찌릿한 전기에 감전되는 일이 많아 마음대로 켜지도 못했다. 동네 곳곳에서 새벽의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간이 가장 정확했다.

두 분은 새벽부터 바쁘셨다. 아버지는 방에 불을 지피며 쇠죽을 쑤신다. 어머니는 아침밥을 짓고 다섯 자식의 도시락을 싸셨다. 지금처럼 밥을 담는 그릇과 반찬을 담는 그릇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도시락 안에 반찬 칸이 있어 그곳에 김치 등을 넣는다. 가끔씩 계란 프라이를 밥 위에 놓아주면 기분 좋은 날이다. 도시락을 반듯이 넣어야하는데 책가방이 적어 옆으로 넣고 가다보니 반찬국물이 흘러 가방과 책에 벌겋게 스며드는 일이 다반사고 항상 냄새가 진동했다.

그때는 쌀이 부족해 점심 도시락을 못 싸오는 학생들도 꽤 있었던 시절이라 도시락을 갖고 온 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도시락에 대한 추억도 있는데 바로 혼분식장려운동이다. 점심시간이 돌아오면 선생님께서 도시락에 보리를 30%이상 넣었는지를 검사하고 합격해야 밥을 먹었다. 지금 아이들은 상상도 못할 얘기이다.

학교에서도 많은 추억이 있었다. 좁은 교실에는 석유냄새가 진동했다. 전기가 없어 석유등잔불을 켜고 살았기 때문에 온몸에 냄새가 밴 것이다. 매일 매일 목과 손에 때 검사를 하던 일. 여학생에게는 머리의 이를 검사 하던 일. 네모난 노란 옥수수 빵과 우유 한 컵을 배급 받아 먹던 일. 조금이라도 큰 빵 조각이 돌아오기를 기대하던 마음. 매주 월요일에는 운동장에 모여 조회가 있었고 국민교육헌장 낭독과 어김없이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있었다.

예쁜 단발머리 여학생들이 하얀 교복 깃을 나풀거리며 좁은 논두렁을 지나 구불구불한 민둥산을 지나가면 쑥스러워 말 한번 걸지 못했어도 마음속엔 그리움과 연정이 피어나던 시절이었다. 그런 학생들이 이제 노년의 문턱을 넘어 섰다. 고향 길은 우리에게 꿈과 낭만이 서려있던 길이다. 이제 그 길을 다시 걸으니 지난 옛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초․중․고 12년 동안 걸었던 길옆의 통통 방앗간, 풍골의 큰 밤나무, 신기했던 양계장, 황색의 가마니 짜는 공장, 벽돌공장, 당면공장 등은 모두 사라졌고, 마을 앞 논과 밭은 온갖 잡다한 공장과 상가로 꽉 들어차고, 면소재지는 이미 시가지가 돼 아파트 숲을 이루고 있는 터라 옛 기억과는 멀어져 버렸다.

끝이 안보였던 김포평야와 한강도, 꽤 길었던 다리도, 고래 등 같았던 기와집도, 드넓었던 학교운동장도 이젠 너무 초라하게 하게 보인다. 고향 길은 철없이 뛰어놀기만 했던 시골소년 시절의 나로 돌아가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주었다. 끝없는 갈증의 연속이었던 인생에서 내가 걸었던 옛길을 찾아가 보는 일, 참 감동스러운 일이었다.

나의 고향 김포는 참 넉넉한 곳이었다.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이 만들러준 드넓은 평야는 언제나 우리들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드넓은 들과 더불어 평화로운 삶을 이루었다고 본다. 비록 속절없이 세월은 흘러가갔어도 그래도 잊지 못하는 추억을 생각하니 나의 가슴이 환해진다. 봄이 오려나 보다. 살랑 살랑 바람 끝이 엄마 품처럼 따스했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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