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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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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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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1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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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우리 동네 마을회관에서 시를 가르친다 하여 들락거린 적이 있다. 그런데 마을에서 누가 그랬다고 했다. “그 얼굴에 무슨 시를 쓰겠다고.” 아마도 시를 얼굴로 쓰는 것 인줄 알았나 보다. 하기야 내 얼굴이 지성과는 꽤 거리감이 있게 생긴 얼굴 아닌가. 시가 보통 글인가. 동네 사람이 생각하는 시를 쓰는 사람이란 공자 얼굴에 뿔테 안경이나 걸친 얼굴이 해맑은 사람이나 쓰는 것인 줄 아는 것 같다.

서울 신촌에 있는 병원에 예약이 되어 있어 집을 나서려니 아내가 근심스럽게 생각하며 차멀미를 마다 않고 따라 나섰다. 아내는 조금 힘들거나 피곤하면 얼굴 붓는 것으로 표시를 냈다. 사람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얼굴로 나타난다는데 지금의 얼굴로 봐서는 아내가 환자 같다.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는 아내는 내 얼굴을 주위사람들과 비교하더니 촌에서는 몰랐었는데 서울에서는 내 얼굴이 상대적으로 검어 보인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병원 대기실에 걸린 거울을 보니 불안한 눈빛하며 굳게 닫힌 입, 검은 얼굴이 고집스러워 보이는 중년 남성을 가감 없이 연출해 보였다.

진료를 마치고 대학교 앞에서 학생들과 섞여 버스 정류장을 찾아가는데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사람에 떠다니는 것 같았다. 결국 사람에 떠밀려 아내와 이산가족이 되었다. 사람들이 흘러가는 그 앞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전단지를 나눠주는데 학생들은 냇물이 물 가운데 있는 돌 피하듯이 아주머니 곁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중 아주머니 한 분이 팔을 뻗어가며 전단지를 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그것을 꼭 받아야만 집에 가는 귀성열차표 쯤으로 생각하며 겨우 받아 쥐었다.

신촌 지하도의 한가한 길을 걸으며 전단지를 펴보니 ‘가정폭력, 안 돼! 싫어!’라고 쓰인 전단지였다. 아마도 그 아주머니는 우리 동네 사람이 내 얼굴을 평한 것처럼 내 얼굴을 보고 가정 폭력을 일삼는 것으로 확신을 한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랬기에 필사적으로 전단지를 건네려 한 것 같았다. 사람들에 밀려 잠시 이산가족이 되었던 아내가 내가 받은 똑 같은 전단지를 들고 오는 것을 보니 아마도 차멀미로 부은 아내의 얼굴이 그 아주머니가 보기에는 맞고 부은 얼굴로 보이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내가 받아온 전단지를 차에서 펴보니 ‘가정 폭력 사건 처리 절차’라고 씌어 있었다. 아마도 그 아주머니들은 확신에 차서 아내에게 전단지를 주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서 얼굴 부은 여자여, 맞고 살지 말고 가서 신고하여 절차 밟으라.’고. 그 앙증맞은 전단지에 시 한 편이 있었다.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제 생일이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 지난 밤 그는 저를 또 두드려 팼지요. / 그런데 그전의 어떤 때보다 훨씬 더 심했어요. /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어요. /

바로 제 장례식 날이었어요. / 지난밤 그는 드디어 저를 죽였지요. / 저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했지요. /

제가 좀 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어 그를 떠났더라면. / 저는 아마 오늘 꽃을 받지는 낳았을 거예요. /

- 어느 가정 폭력피해자의 고백백서 –

아내는 그까짓 것 버리지 못하고 집에까지 갖고 왔냐고 몰아쳤다. 가정 폭력이란 주거를 함께하고 있는 집 안에서 자식에 대한 부모의 폭력을 포함하여, 부모에 대한 자식의 폭력 및 부부 사이의 폭력이다. 가정 폭력의 종류는 폭력 행사의 대상을 기준으로 하여 부모의 자녀에 대한 학대인 아동 폭력, 부부간에 발생하는 ‘매 맞는 남편’의 남편 폭력과 아내 폭력, 알코올 중독과 같은 약물 중독으로 인하여 배우자인 아내와 자녀 등의 가족 구성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가족 폭력, 성인 자녀에 의한 노부모 학대로 나타나는 존속 폭력 등이 있다. 이 중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가하는 일 이 가장 많다고 한다.

남들이 볼 때 내 얼굴이 단순 무식하게 생겼으므로 가정폭력이 일어날 수 있는 소지가 우리 집에는 다분히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해서 ‘꽃으로도 때리지 마세요.’라는 처량한 문구가 적힌 앙증맞은 전단지를 집에다 두기로 했다. 그 일도 지성과는 거리가 멀게 생긴 내 얼굴 때문에 한 일이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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