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문제열의 窓] 추억의 농촌 봄 풍경
상태바
[문제열의 窓] 추억의 농촌 봄 풍경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3.23 15: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며칠 새 부쩍 봄기운이 느껴진다. 바람도 어제의 바람이 아니고 초록도 어제의 초록이 아니다. 땅에서도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어릴 적 농촌 봄 풍경이 저절로 떠오른다.

봄이 돌아오면 장독대 옆에 겨우내 얼었다 녹으면서 뭉그러진 작은 화단에 돌로 테두리를 쌓고 그 안에 패랭이꽃, 다알리아, 칸나 등을 심었다. 집 앞 언덕 경사면에는 잔디를 입히고 개나리, 사철나무, 앵두나무, 찔레꽃을 심고, 집 뒤에는 밤나무와 감나무, 은행나무를 심었다. 창가 쪽에는 포도나무를 심어 햇빛도 막고, 익기 전에 한 알 두알 따먹는 기쁨이 참 좋았다.

농사일이 시작된다. 3월 하순에는 감자를 심는다. 밭을 갈아 두둑을 만들고 골을 갈라 그 속에 씨눈이 붙어 있는 감자를 심어 나간다. 감자종자는 감자의 눈이 붙은 부분을 2~3조각 내외로 절단해 볏짚을 태운 재를 묻혀 심었다. 태운 재는 무균상태로 씨감자에 병균이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양력 4월 20일 무렵에는 곡우(穀雨)가 돌아온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된다. 일손이 바빠져 온다. 벼농사의 시작은 볍씨를 준비하고 고르는 일이다. 쭉정이 선별을 위해 소금물에 담가서 뜬 것은 가려내고 가라앉은 볍씨만 얻는다. 종자가 빨리 발아되도록 맑은 물에 담가서 수분을 흡수하게 한다. 보통 10일정도 담가 싹을 틔운다. 이때 부정한 일을 당하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집안에 들어와서도 볍씨를 보지 않게 했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거나 만지게 되면 싹이 잘 트지 않아 그 해 농사를 망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싹을 틔우는 동안 못자리를 만든다. 못자리는 2천 평당 30평 정도로 논바닥에 골을 지어 폭 120㎝ 안팎으로 모판을 마련했다. 못자리는 두둑을 만들고 그 안을 써레로 울퉁불퉁한 바닥을 평평하게 골랐다. 못자리 바닥은 재거름과 똥거름을 주었다. 볍씨는 모판에 일정한 수량이 균형 있게 콕콕 박히게 골고루 뿌렸다. 볍씨를 치고 나서 모판에 물을 대었다.

필자가 어릴 때는 쌀의 생산량을 증대하여 식량자급자족을 하겠다는 것이 최대 과제였다. 이때 정부가 적극 추천한 품종이 바로 통일벼다. 정부에서는 통일벼 수확량을 측정해서 수확이 높은 경우 ‘다수확 증산왕’상을 주고 재배를 독려했다. 서로 수확을 많이 내려고 애썼고, 면(面)서기도 자기 담당부락을 일등 만들려고 야단법석이었다.

문제는 통일벼가 끈기가 없어 밥맛이 없었다는 데 있다. 또 벼 알이 잘 떨어져 추수과정에 손실이 많은 등 불편함이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부락 지도자인 경우 모범을 보이기 위해 전체 논에 모두 심기도 했지만, 대개의 경우 경지면적을 나눠 기존 종자와 함께 통일벼를 재배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통일벼는 자연스럽게 재배를 하지 않게 되었다.

5월 하순에는 모내기를 했다. 모판의 모가 20㎝ 정도 자랐을 때다. 소를 이용해 쟁기질을 하고, 물대기, 써레질, 물 빼기, 거름주기, 논바닥밀기, 물대기 등 수차례의 공정을 거쳐 모를 심었다. 10여명 이상이 마을 품앗이로 못줄을 띄어가며 한줄, 한줄 꽂아 나갔다. 한사람이 손모내기로 하루에 200평정도 모내기를 했다. 1960~70년대 중반까지는 농촌의 모든 학교가 봄방학을 주고 모내기 일손을 돕도록 했다. 1980년대 초까지 전국 모내기 경진대회가 있었다. 군(郡)별로 모를 빨리 잘 꽂는 선수를 10여 명씩 선발해 도(道)단위 모내기 시합을 거쳐 1등하면 합숙 훈련까지 하며 전국대회에 참가했다.

모내기가 시작되면 부모님께서는 새벽 6시 이전에 일터로 나가 저녁 8시쯤 돌아오셨다. 마을 전체모내기가 끝날 때까지 20일 이상을 꾹 참고 이겨내신다. 밤에는 허리가 아프셔서 신음소리가 들린다. 물파스도 귀할 때다. 처방이라고는 가을에 말려둔 쑥대를 삶아 비닐자루에 넣어 깔고 자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약효가 있었던 건지 궁금하다. 고된 나날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기계화돼 이런 모습이 모두 없어 졌다. 옛 어르신들의 그 힘겹던 고통과 애환을 누가 알까 하다가도 따뜻한 봄 햇살에 고통도 애환도 사라진다. 그래서 난 봄이 좋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