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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의 e글e글] 양녕과 충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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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의 e글e글] 양녕과 충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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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06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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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태종은 정비 민씨와의 사이에서 양녕, 효령, 충녕, 성령 이렇게 4명의 아들을 뒀다. 태종이 중전 민씨 일가를 몰락시키고 많은 공신들을 처치한 이유는 오로지 미래 군주인 세자 양녕대군 이었는데, 양녕대군의 탈선이 만만찮게 문제가 됐다.

양녕은 어린 시절부터 빡빡한 군주교육을 따라가지 못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며, 열일곱에 이르러서는 최초로 기생을 불러 통하는 등 여색을 밝히기 시작했다.

태종은 초장에 버릇을 고쳐놓으려 여러 시도를 하였으나, 그럼에도 양녕은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을 넘어 장안의 건달들을 궁 안으로 불러들여 놀기까지 하는 등 탈선의 종류와 강도를 점점 높여 갔다.

야사에서는 세자의 이러한 탈선이 아버지의 무자비한 숙청에 대한 반발이라고도 하고, 왕의 마음이 충녕에 있음을 알고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도 하나, 이렇게 볼 만한 그럴듯한 근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냥 놀기 좋아하는 금수저였다고 보면 된다.

한편,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장차 세종대왕)은 어려서부터 영특한 데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 태종의 관심을 받았다. 같은 왕자라 하더라도 세자와 왕자의 지위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으니, 세자는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것이나 왕자는 그냥 종친에 불과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본의 아니게 역모에 휩쓸려 죽어나갈 수도 있는 지위였다.

따라서 충녕의 뛰어난 자질은 어디에도 사용할 곳이 없는 쓸데없는 것이었다.

실록에는 충녕이 세자에 도전하는 것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을 정도의 도발행위를 여러 번 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를 두고 충녕이 양녕의 탈선을 빌미로 왕위를 욕심냈다거나, 충녕의 뛰어남을 강조하기 위한 사관들의 아부성 멘트였다는 등의 해석이 있으나, 진실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세자 양녕은 여러 번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태종에게 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아버지는 뭘 잘했다고 날 나무라십니까”라는 취지의 편지가 결정적 이유가 되어 세자의 자리에 오른 지 14년 나이 스물다섯에 폐위되고, 충녕이 세자가 됐다.

충녕대군은 세자가 된지 두어 달 만에 태종으로부터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오르니, 이 분이 바로 대한민국 역사상 위대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세종대왕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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