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기고] 결혼
상태바
[기고] 결혼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4.21 09: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오늘의 결혼식을 위해 가을에 서른 된 아가씨와 그렇게 마주앉아 선을 보았나 보다. 청첩장 없이 마을 늙은 참죽나무에 매달려있는 스피커에서 나의 결혼식을 알렸다. 동네사람들은 결혼식보다도 식당을 찾아오는 사람들 같았다. 뒷집의 경선이 아버지는 소 덕석 같은 윗도리 걸치고 가래 끊는 소리로 국수는 어디서 먹느냐고 묻고, 한 무리의 동네 어른들도 잘해보라는 말만 남기고 식당으로 몰려들 갔다. 내가 오늘 결혼식의 신랑인지 식당 안내원인지 분간이 안 섰다.

삼십여 년을 기다린 결혼식이 한 시간 만에 끝났다. 시간적으로는 싱겁기도 했지만, 신부 쪽에서 대동한 예배 복 치장의 목사님이 신들린 듯한 주례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 딴에는 격식 차린답시고 바쁜 친구 불러다가 사회자로 내세웠지만, 사회자도 필요 없이 목사님 혼자서 북치고 장구쳐대며 끝을 맺은 것이다. 한쪽 구석에 할 일을 잊어버린 사회자는 멀뚱히 서있었고, 신랑 신부는 어쩌다 한 번씩 물어보는 소리에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한두 마리 대답하는 것밖에 없었다. 주례님 혼자서만 얼굴이 벌개져서 열을 냈고 땀을 흘린 것이다. 목사님의 표정을 보니 무엇을 얘기했는지 잘 알겠다. 앞으로 매사에 하는 일을 목사님 주례 서듯이 열의를 갖고 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아닌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신혼여행지로 제주도는 여의치 않아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기분 살리기 위하여 마조리 노엘의 샹송 ‘사랑은 기차를 타고’라도 들었으면 좋으련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탄 기차는 허니문 트레인이 아니었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한겨울인데도 부산역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런던에는 안개가 있듯이 부산에는 보슬비가 유명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로등의 뿌연 빛이 우윳빛 같다며 항구에서만 들을 수 있는 운무 시그널을 효과음악으로 새색시의 팔짱을 끼려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사나이가 나대신 새색시의 팔짱을 끼고 달아난다. 검은 밤에 검은 안경 검은 바바리 걸친 녀석에게 끌려 검은 세단에 갇힌 것이다. 시국이 공안시국이라 검은색만 봐도 무서운데 온통 검은색 일색인 놈들에게 납치를 당하고 보니 호텔이 아닌 공안 분실로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안가로 사용하는 것 같은 삼류호텔에다 감금하고 2박3일 부산일주에다 부곡까지 저렴한 가격으로 모신다는 흥정을 해대는데 삐끼였다. 순간 상스러운 소리가 목구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자리가 자리인지라 가까스로 참았다.

블랙 맨들 점잖게 돌려보내고 잠시 생각하노라니 생각 많은 노총각이어서 그런지 하이네의 ‘결혼식장에서의 웨딩 마치 소리는 나로 하여금 군인이 싸우러 갈 때 울리는 행진곡소리를 연상케 한다’라는 구절이 밀월의 이 밤에 무겁게 머리를 짓눌렀다. 무거운 머리를 핑크빛 생각으로 헹구고 그 밤에 여태껏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여자를 내 일생의 러닝메이트 겸 룸메이트에 임명했다.

귀가 전날 남은 시간으로 온천이나 가자며 동래온천을 찾아갔다. 횡단보도도 없는 도로를 가로지르며 뛰어오는 사나이가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형님, 나요.”하는데, 부산역에서 놀라서 가라앉지 않은 가슴이 또 한 번 놀랐다. 부산바닥이라는 곳이 갑자기 사람 뛰어들어서 놀라게 하는 땅인가 보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며칠 전 예비군 훈련장에서 해병대 폼으로 훈련을 같이 받던 동네 후배라 놀라면서도 반가웠다. 1․4후퇴 때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굳세어라 금순아’의 오빠 금돌이가 영도다리에서 금순이를 만나는 것보다도 더 반갑게 껴안았다. 후배는 직장이 그곳이라 했다. 우리는 온천은 뒤로 미루고 술집으로 향하여 몸의 때보다도 목구멍의 때를 벗기는데 여유시간을 다 할애해 버렸다.

2박3일의 짧은 여행기간에도 순조로움을 깨는 돌출된 일이 생기는 것은 우리들의 순조로운 결혼생활에 생각지도 않는 위기가 생길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이 들렀다. 아내의 볼멘소리에 신혼여행지에서 예정에도 없던 일련의 일들은 우리 부부가 살아가며 맞부딪칠 수 있는 상황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일종의 예행연습이라고 했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