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강상헌의 하제별곡] 윤여정 ‘깃발’과 국회의원의 ‘홍익인간’
상태바
[강상헌의 하제별곡] 윤여정 ‘깃발’과 국회의원의 ‘홍익인간’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5.11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국회의원들이 최근 우리나라의 교육이념 관련 법안을 냈다가 곧 거둬들였다. 역풍이 거셌다고 한다. ‘홍익인간’이란 말을 빼자고 발의한 교육기본법 일부 개정 법률안 얘기다.

발의나 철회는 공적(公的)인 것이다. 개인적인 취미활동이 아니다. ‘국민의 대표’라는 선량(選良)들의 행위이니 가벼운 이벤트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 뜻도 그렇지만 그 내용의 일점(一點) 일획(一劃)은 고래심줄 시민의 세금이다. 교육은 백년지계(百年之計)다. 엄중하다. 

명분이, 논리도 약하다. ‘교육이념으로 규정하고 있는 홍익인간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교육지표로 작용하기 어렵다’고 했단다. 그래서 뜬금없이 교육기본법을 개정하려 했다고? 다른 속셈이 있었을까, 그럼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겨레의 줏대는 장난거리가 아니다.

추상적(抽象的)이라는 말은 ‘실체가 없다, 그래서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말이 공허(空虛)하니까 버리자는 것이다. 신화(神話)는 미신이라고? ‘당신의 신화’를 미신으로 볼 사람도 세상에는 많다. 더구나 저 신화는 우리 겨레의 마음이다.  

말에는 뜻이 있다. 광익(廣益)이 아니고 홍익(弘益)인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가? 廣이나 弘 둘 다 ‘넓다’는 훈(訓 뜻)을 가진 글자다. 개국시조(開國始祖) 단군 할아버지는 ‘광익’ 대신 ‘홍익인간’을 썼다. 

弘과 동이(東夷)겨레의 夷 글자를 본다. 둘 다 활 궁(弓)자가 있다. 한자는 그림이다. 활은 늘 낙낙하게 몸을 굽히고 있다가 왜구(倭寇) 같은 더러운 침략자를 만나면 탄성(彈性)과 복원의 본능을 팽팽하게 당긴다.

큰 활 이(夷) 글자의 내역이다. 옛 중국이 늘 버거운 상대인 우리 선조에 겁먹어 ‘무서운 활’이라 못 부르고 찌질하게 ‘오랑캐’라고 했대서, 우리도 그리 따라 부르면 되는가! 우리는 문자에 밝은 당당한 겨레다. 궁도는 우리 선비가 꼭 지녀야 하는 심신(心身)의 오랜 공부였다.

갑골문의 弘은 활과 활시위를 떠나는 화살 그림이다. 그 화살, 어디까지 (멀리) 갈까? 이 장면 그림이 문장(文章)의 세계에서 ‘넓다’는 뜻으로 번져 역사와 신화로 전승된 것이다.  

나라 살리는 크고 거룩한 힘이 거기서 나왔다. 충무공 장보고 등의 우리의 활이다. 김한민 감독 영화 ‘최종병기 활’(2011년)과 ‘명량’(2014년)은 우리 활이 (국제적으로)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는지를 보여준다.

양궁 세계재패의 기개가 어찌 연관 없으랴. 이런 긍지를 ‘추상적이니 버리자’고? 활의 원리가 시적(詩的) 이미지로 우리의 줏대 ‘홍익인간’을 빚었다. 말에는 뜻이 있다. 실(체)없는 것이 아니다. 글 알았으니, 이제 자승(自繩) 자박(自縛) 자멸(自蔑)의 언사(言事) 다시 꺼내지 말라.

홍익인간은 우리 근대사 동학의 ‘사람은 곧 하늘’ 인내천(人乃天) 사상과 맥(脈)이 같은 단군과 동이겨레의 깃발이다. 우리의 얼굴이다. 그 본디는 인류를 향한 사랑이다.

하늘 열고(開天 개천) 나라 경영하는 겨레의 뜻이 혐오(嫌惡) 차별(差別) 자만(自滿)에 있지 않음을 또렷이 새긴 아름답고 거대한 헌장(憲章)이다. 개벽의 새 시대, 저 깃발 더 아름답게 휘날린다. 요즘엔 윤여정도, BTS도 겨레 대표로 깃발 날린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