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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36]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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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36]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자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1.05.19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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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관 시인(1949년생)
전북 정읍 출신으로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시)를 통해 등단. 한국동시문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아동문학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함.

<함께 읽기>평소 미드 CSI를 자주 보면서 느낀 점은 흔적(얼룩)을 한 점도 남기지 않는 범죄는 없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범인은 피 묻힌 흔적을 지우러 애쓰지만 루미놀이란 약품을 현장에 뿌리면 피 얼룩이 나타나 완전범죄를 꿈꾸던 범인을 궁지로 몰아넣는다는 등.

필자는 유난히 얼룩을 많이 남긴다. 특히 술을 마시며 찌개류 같은 안주를 먹었다고 하면 웃 도리에, 심지어 바지에까지 흔적을 남긴다.

아내는 나더러 술 마시고 온 날엔 '털털이'라 쫑알거리는데 뒷날 보면 웃도리와 바지 등 이곳 저곳에 얼룩 천지다.

시인도 비슷한 듯 '새 양복 입고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면 옷에 얼룩이 묻어 있고', '즐거운 식사 시간에도 국물이 떨어져 바지에 얼룩을 남긴다'고 했으니까. 물론 그것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과 말을 할 때에도 / 말들이 흙탕물로 튀어 / 마음의 얼룩으로 남는다"

시인이 힘을 준 시행이다. 눈에 보이는 얼룩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말을 주고받다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 상대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얼룩.

필자 역시 그렇다. 아내에게, 지인들에게, 그리고 수많은 독자들의 가슴에 많은 얼룩을 남겼다. 내 주관적 주장만 앞세우다 '내가 써내려간 글들이 콧물처럼 얼룩을 남겼을 것이라 생각 든다.

"꽃에 사뿐히 앉았다 날아간 / 나비처럼 / 얼룩을 안 남길 수는 진정 없는 것일까" 살아가면서 얼룩을 한 점 남기지 않고 살아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의 말과 행동이 남기는 얼룩만은 얼마든지 줄일 수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자세는 꽃에 나비가 사뿐히 앉은 그 모습처럼 아무리 험하게 살아도 그 남김의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는 없는지, 마지막 '나비가 꽃에 앉았다 날아가는 것처럼 얼룩을 남기지 말자'란 시행을 읽으면서 필자의 생각을 덧붙인다. '아예 얼룩을 남기지 말자'보다 '얼룩을 남기되 꽃에 앉았다 날아간 나비가 씨앗을 퍼뜨리는 얼룩을 남기듯 '아름다운 얼룩을 남기자'란 뜻을 담았더라면, 어차피 얼룩을 남기지 않고 살 수없는 세상사인데 ‘남긴 얼룩이 아름다운 흔적이었음' 하고...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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