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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나경원의 망상'-언어를 오염시키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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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나경원의 망상'-언어를 오염시키는 정치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6.1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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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착각은 자유, 망상은 해수욕장’ 오래된 유행어다. 빗대서 ‘망상이 막말이라는 착각은 자유인가?’ 물어보자. 착각(錯覺)과 망상, 재미있는 주제다. 정치인 나경원 씨의 ‘비논리적 언어 구사’ 때문에 이런 제목이 떠올랐다.

망상(望祥)은 ‘상서로움을 바라본다’는 뜻의 아름다운 동해안 휴양해변이다. 망상(妄想)과 발음이 같아 저런 빈정거림에 원용(援用)된 것이다. 지역 주민들은 이를 “저런 무식한 말이 있나”하며 찝찝해한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의 정치 유세에서 나 씨는 망상이 ‘장애인을 정신적으로 비하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발언’이라고 했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말투를 빌려 막말론(論)을 편 것이다. 이준석 당시 ‘후보’의 발언에 화가 났을까. 그 말대로 망상은 막말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나 씨는 자신을 공격한 말 속의 단어를 시비의 대상으로 삼았다. 반격으로 ‘저런 막말 쓰는 사람은 당 대표 자격이 없다’고 어휘론 검증을 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착각은 자유’라고도 했으나, 공인(公人)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인이 공개적으로 한 발언은 시민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문제다. 저 ‘착각’을 짓는데 우리 고래심줄 세금도 꽤 쓰였다 생각하면 한심한 생각도 든다.

나 씨는 자연어(自然語) ‘망상’과 용어(用語) ‘망상’을 혼동했다. 몰라서, 바른 인식(認識)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혹 의도적 전술이었다면 이는 지능적인 ‘문화적 도발’로 지탄받을 수 있다. 바른 우리말글을 해칠 수도 있는 발상(發想)일지 몰랐을까?

자연어 ‘망상’과는 다른, 망상증(症) 과대(誇大)망상 피해(被害)망상 등의 의학(적) 용어가 있다. 병적 현상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언어)다. 이런 용어의 뜻을 확대해 일상적인 말 망상의 뜻으로 (시민들이) 혼동하도록 질러버린 것이다.

그의 그 말은, 망상이 (여러 종목) 장애인의 일반적인 증상이라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되레 장애인을 비하한다는 평가를 들을 수도 있는 말이다.

자연어 즉 우리 일상의 말 망상을 세속어로 풀어 새기자면 ‘망할 놈의(妄) 생각(想)’쯤이 된다. 사전은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된 생각을 함. 또는 그 생각’이라고 설명한다. 좀 못된 녀석을 꾸중할 때 쉽게 쓸 수 있는 말인 것이다. 장애인 비하의 뉘앙스(어감)는 없다.

나 씨 발언의 ‘망상’은 원래의 이 뜻에 ‘어떤 망상’의 뜻이 얹힌, 2차적 활용(活用)이다. 병적인 망상, 과대한 망상, 피해를 본다는 의식이 강한 망상 등의 병증(病症)의 이름인 것이다. 원래 망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병원의 언어’다.

그 말이 그 말 아니냐고 우긴다면, 세상에 공부는 왜 필요할까. 뭇 사물(事物)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푸는 것, 나와 너, 과거와 지금, 동서양의 차이 따위를 이해하는 것이 결국 공부의 뜻 아닌가. 다름(異 이)과 틀림(誤 오)의 구분도 한가지다.

말귀과 글눈이 맑고 밝아야 한다. 이는 유식과 무식(無識)의 분기점이다. 우리 말글 한국어의 작동 원리에 관한 기본적인 인식을 갖추자는 당부이기도 하다.

언론의 언어처럼 정치인의 언어도 공적 책임이 크다. 대충 비슷하다고 망상을 ‘장애인들이나 하는 생각’ 쯤으로 간주하는 언어구사는 구설수나 설화(舌禍)를 부를 터다. 우선 언어를 대하는 안목을 겸손하게 다질 것. 또 전문가나 사전과 항상 상의할 것, 늘 공부할 것, 당부한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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